안나경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
안나경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에너지정책센터 연구원

지난 4월 독일 베를린에서는 100여 개국의 45명 장·차관급 인사 등 정부관계자와 2000여명의 산학연 전문가가 모여 각국의 에너지전환에 대해 논의하는 BETD(Berlin Energy Transition Dialogue) 포럼이 있었다. 올해 포럼은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각국의 정책과 기업의 사업전략 등 다양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에너지전환이 촉발한 기술, 금융, 제도의 혁신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가 진행된 가운데 에너지전환에 따른 지정학적 영향이 주요 세션 주제 중 하나였다. 세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중앙집중식 에너지시스템에서는 화석연료가 큰 역할을 수행했으나 앞으로는 전례 없는 권력 구조의 변동이 예상된다고 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각국의 자원 의존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포럼에 참석한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안보 위협 요소로 인식하고 태양광, 수력 등 대체 자원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국의 에너지안보 강화 노력이 전 세계적인 에너지전환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성장으로 21세기 지정학 지도가 새롭게 바뀌는 시점이 온 것이다.

에너지전환 확산에 따른 권력 구조의 이동은 새로운 산업 모델의 탄생을 수반한다. 포럼에 참석한 에너지 리더들은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산업이 지식기반 산업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식산업은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있어 지식, 즉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전통적 에너지산업에서는 화석연료를 재화로 활용해 석유, 가스를 판매하는 것이 기업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반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산업은 재화 중심 경제에서 기술과 서비스 중심 경제로 이동한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면서 에너지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융합한 에너지 서비스가 에너지산업 내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에너지 공급 방식의 변화는 에너지 서비스화를 촉진한다. 중앙집중형에서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시스템으로 전환되려면 각 시스템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디지털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에너지시스템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서비스가 창출된다. 기존의 에너지효율관리 서비스에서 확장해 전력 거래, EV 충전, 가상발전소, 수요 반응 서비스 등 분산형 전원과 ICT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 네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이렇게 확장된 에너지 서비스(Energy as a Service) 시장 규모는 2017년 631억 달러에서 연평균 14.9%씩 성장해 2026년에 2211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에너지산업의 지식산업화로 에너지 공급 주체도 다변화됐다. 전통적인 에너지기업은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가능한 대기업 혹은 자원 보유국의 국영기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식산업화로 기술력이 중요해지면서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에너지산업에 진입했다. 소프트뱅크는 통신과 전력을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운영해 각 가정에 친환경 전기를 판매한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소금을 이용한 차세대 에너지저장 기술을 개발했고 본격적인 사업화를 위해 최근에 이 사업을 분사시켰다. 이처럼 기술 경쟁력이 강한 통신회사와 인터넷기업을 필두로 에너지산업의 플레이어가 다변화됐다. 그리고 향후에는 전통적으로 에너지 소비자였던 개인들도 에너지 공급주체로 참여하면서 에너지산업의 외연이 더 크게 확장될 전망이다.

에너지산업의 지식산업화로 권력 구조가 자원 중심에서 기술 중심으로 이동했다. 에너지 지식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에너지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이 분명하다. 먼저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 자립도를 제고하고 우리 에너지산업을 지식산업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지식산업 육성을 위해 R&D를 통한 기술혁신을 지원하고 기업의 참여기반을 마련하는 시장제도 개선 등도 병행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에너지 지식기반의 산업정책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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