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파이팅)승강기안전,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다(하)
'2:8 법칙'이 지배하는 승강기산업, 중소기업은 어디에?
작성 : 2019년 06월 24일(월) 15:22
게시 : 2019년 06월 25일(화)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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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토(Pareto’s law)의 법칙을 아는가.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1897년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영국의 부와 소득 유형을 연구하다 발견한 사실이다. 흔히 ‘20:80(또는 2:8) 법칙’으로 통용되는 이 개념은 마케팅에 접목돼 20%의 VIP고객이 80%의 매출을 올려준다는 의미로 사용돼 왔지만 다양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쓰인다.
2 : 8 법칙은 우리나라 승강기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전체 20%도 안 되는 메이저 승강기 제조사들(대기업)이 매년 전체 승강기의 80% 이상을 설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와 티센크루프, 오티스, 미쓰비시, 쉰들러 엘리베이터 등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내 중소기업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승강기업계 2:8 법칙 1990년대부터 시작…외국계 기업 진출 이후 ‘고착화’
승강기업계에 2:8 법칙이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다. 당시 국내에는 LG산전, 현대, 동양, 중앙 엘리베이터 등 토종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시장점유율 80%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승강기 설치규모가 늘어나자 글로벌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에 이어 수요가 많았고, 신제품 등에 대한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글로벌 기업들은 인지도와 생산시설을 갖춘 현지법인을 인수·합병하는 전략으로 사업 기반을 확보했다. 오티스와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쉰들러 등 글로벌 승강기 제조사들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에 법인을 세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법인을 설립한 곳은 오티스다. 미국계 기업인 오티스는 1999년 LG산전 엘리베이터 부문을 인수하며 우리나라에 진출했다.
1979년 금성엘리베이터와의 합작투자를 통해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미쓰비시는 2001년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섰다. 이후 독일계인 티센크루프가 2003년 동양에레베이터를, 스위스의 쉰들러가 중앙엘리베이터를 인수하며 국내에 첫발을 들였다. 약 200곳에 이르는 승강기 제조사 중 남은 대기업은 오직 현대뿐이었다.
외국계 기업들은 세계적인 서비스와 품질 등을 기반으로 국내 고객들을 사로잡았다. 아파트, 빌딩, 고급주택 등에는 대부분 외국계 기업들의 제품이 설치됐다. 시장점유율도 점점 늘어갔다.
기업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승강기 시장점유율은 외국계가 진출한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토종 중견·중소기업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외국계가 차지했다. 2006년까지 업계 1위를 달렸던 오티스는 2007년부터 현대에 최고 자리를 내줬다. 현대는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가져가며 12년 동안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후 현대와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등 이른바 ‘빅4’는 매년 설치되는 승강기의 80% 이상을 쓸어 담았다. 최근에는 시장점유율 85% 이상을 차지하며 2:8을 넘어 1:9로 가고 있다.

◆외국계·대기업 시장점유율 85%까지 올라…중소기업 성장사다리 ‘막혀’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현대와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 쉰들러 등 5개사가 설치한 승강기는 매년 증가했다.
2016년 5개사가 설치한 승강기는 3만3937대로 전체(4만1067대) 중 82.6%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중소기업이 설치했다. 2017년에는 83.7%(3만7255대)로 1.1%p 상승했다. 전체 설치대수도 4만4481대로 늘었다. 2018년에는 84.9%(3만7165대)로 시장점유율이 더 커졌다.
승강기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대기업이 모두 가져가는 셈이다. 중소기업은 1년에 고작 6000~7000대 정도 생산하고 있다. 이마저도 대기업이 생산하지 않는 비표준 제품인 화물용 승강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점유율은 민간부분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그나마 중소기업들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공공시장 덕분이다. 공공분야는 중소기업의 판로확대를 보장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분속 105m 이하 시장은 대기업의 시장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공 분야에서도 일부 발주처가 예외규정 등을 이유로 대기업으로부터 승강기를 구매하기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실력 있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나아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고착화된 승강기 시장구조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미 대기업에 장악된 시장을 뚫기는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중소기업의 하소연이다.
업계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경영여건상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중소기업엔 ‘싼 게 비지떡’이란 굴레가 씌워져 있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제품이 더 좋다는 소비자의 인식도 중소기업의 시장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기업 제품만 선호하다보니 중소기업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투자를 통한 기술개발은 커녕 기업경영도 장담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가는 성장사다리가 끊어져 있다는 얘기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대기업에 비해 가격경쟁력도 뒤떨어지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화물용 승강기 시장과 공공시장으로 몰린다.
화물용이나 비표준 제품은 대량 생산이 어려워 대기업이 손대지 않는 시장이다. 전체 시장의 10%도 채 안 되는 규모다.

◆중소기업 육성정책 미미…공공시장 판로확대 중기부·산업부 결단 ‘필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비자가 중소기업 제품을 외면하는 상황은 중소기업 스스로 자처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LH는 자사 브랜드 아파트 입주민들로부터 중소기업 승강기를 대기업으로 교체해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의 초기 고장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며 3년마다 지정되는 ‘중기간 경쟁품목’에서 승강기를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은 생산시설의 한계로 대규모 제작이 어렵고, 이렇게 설치된 승강기의 전국적인 유지·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체 유지관리가 힘들다보니 고장이나 사고가 발생할 때 초기 대처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공시장마저 중소기업을 배제한다면 우리나라 승강기산업은 외국계 기업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소기업이 외국계 등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수출길은 막힐 것이다. 일각에선 이 상황에서 외국계가 국내에서 철수한다면 이미 설치한 승강기의 유지·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 때문에 100여개 승강기 제조사로 구성된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은 중소기업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표준화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조합사인 중소기업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시장에서 중소기업의 판로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토종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으로 공공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함께 산업진흥과 육성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승강기산업 분야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미미하고, 이마저도 R&D 분야에 치우쳐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이미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국내 승강기시장에서 토종 중소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승강기 관급공사범위를 확대하고, 특히 6층 건물 이하의 승강기는 중소기업 전용제품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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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xi@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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