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켓과 매너는 어떻게 다를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 전문가는 에티켓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으로서 형식적 측면이 강하고, 매너는 그 형식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방법적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에티켓은 '있다', '없다'로 표현하고, 매너는 '좋다'.'나쁘다'로 표현하는데 전자는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인 반면 후자는 상대방 입장에서 상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배려로 정의한다. 에티켓은 예의범절을 이르는 말로 고대 프랑스어의 동사 estiquer(붙이다)에서 유래한 말인데 오늘날의 의미로 본다면 마음의 꽃밭을 해치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된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떤 규칙을 외우지 않아도 조심스러운 행동이 몸에 배게 될 것이다. 매너라는 말은 'Manuari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는 'Manus(hand-사람의 손, 행동, 습관)'와 'Arius(방식)'라는 말의 복합어인데,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습관, 몸가짐으로 해석된다.

모바일(Mobile)과 에티켓(Etiquette)이 결합된 용어로서 온라인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사용하면서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모티켓이라고 부른다. 특히 카카오톡은 한국에서 가장 일반화돼 있는 메신저인데 단톡방에서 받는 스트레스 지수는 커져만 간다. 자신이 쓴 글이면 그나마 괜찮은데 여기저기가 퍼다 올리는 똑같은 글들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뜬다. 휴대폰 용량부족으로 주기적으로 전체삭제나 미디어파일 삭제를 해야 한다. 직장인들이 받는 스트레스 중 하나는 상사가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것도 모자라 퇴근 후에도 업무선상의 연장으로 계속 숙제를 주는 경우라고 한다.

단톡방에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에는 불만이나 인신공격을 해서는 안 되며 개인톡으로 처리해야 한다. 또한 공지사항은 관리자가 맨 위로 올려 다른 대화에 밀리지 않도록 해놓는다. 특히 누가 공지사항을 올렸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은 당분간 상관없는 내용의 글을 올리지 말고 그 공지에 대한 답변들이 충분히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글을 꾸욱 누르면 댓글 이라는 메뉴가 뜰 때 자신의 의견을 쓰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글이 어떤 글에 대한 답글인지 계속 우스꽝스러운 동문서답 혼란의 무질서가 계속된다. 특히 시차가 다른 한인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은 한밤중과 새벽에도 경쟁적으로 올리는 현지 소식이나 사진들 때문에 카톡 소리가 멈추질 않아 묵음처리를 해놓는 게 좋다. 단톡방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눈팅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행사나 개인사진들은 체크 후 전체보기를 열어 묶어보내기 기능으로 보내야 단촐하다. 개인사진은 본인들한테나 중요하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공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서비스나 봉사하는 분들에 대한 에티켓은 더욱 중요하다.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종업원들이나 골프장에서 동행하는 캐디들한테 반말을 하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심지어 욕설을 하는 몰상식한 사람들도 있으니 자신은 당연히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갑질의식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주말에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포기하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위로가 필요할지 모른다. 구내식당과 외부 음식점 종업원들이나 카운터에 있는 분들한테는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가 입에 배어 있어야 한다.

예식장이나 교회에서 일하는 주차요원들은 그야말로 ‘극한 직업’이나 ‘극한 봉사’다. 겨울이면 매서운 칼바람을 견뎌야 하고 한여름이면 폭서에 시달리는데 요즈음은 사철 미세먼지 속에 노출되어 호흡기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수신호에 절대 권위를 부여해야 하는데 종종 화를 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심지어 돈을 주며 반말로 발렛 파킹을 시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속상하지 않겠는가.

선진국의 기준은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예전에 어린이합창단 수십 명을 인솔해 미주 순회공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외국항공 기내에서 어찌나 떠들던지 책임자로 불려나가 마이크를 들고 여러 번 조용히 시킨 적이 있었다. 이제 자녀를 한 명 정도 낳아 왕자와 공주로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공공질서를 해치는 자녀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예전에 삼대가 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시킨 예절교육의 참맛을 알 필요가 있다. 자유란 질서를 지킬 때 주어지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 중심의 사고와 태도를 지닌 성숙한 구성원들이 되도록 노력하며 다음세대에도 가정과 학교, 교회에서 지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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