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혁 동서발전 사회적가치추진실장
장재혁 동서발전 사회적가치추진실장

매년 봄, 수십만 마리의 연어가 방류된다. 연어를 놓아주며 ‘꼭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모두 자신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연스러운 ‘귀소본능’에 응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난 곳을 떠나 산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그 곳에 대한 향수는 변치 않는다. 다시 돌아가는 삶을 갈망하고 꿈꾸지 않을까.

2019년 4월, 울산 중구 한국동서발전 사옥 내 카페 공간. 여느 카페와 사뭇 다른 분위기다. 조금 전 주문을 받았던 테이블에 다시 가서 주문을 받고, 뜨거운 음료를 주문한 고객에게 차가운 음료를 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들은 그런 실수에 화를 내기는커녕, 유쾌하게 웃으며 받아들이고는 종업원들을 격려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한국동서발전과 내와동산 노인요양원이 함께한 ‘주문을 잊은 카페(1호점)’의 풍경이다. 치매 노인이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바리스타 지체장애인이 음료를 만들며, 마카롱과 느린쿠키(지체장애인이 만든 쿠키)를 파는 형태로 운영된 카페는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뜨거운 반응과 함께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이러한 모습이 생소해 보이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아직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케어란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지역사회 내에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대상자를 사회복지시설에 입주시켜 보호와 치료를 받게 하는 ‘인스티튜셔널 케어(Institutional Care)’방식이 아닌,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서비스를 받는 방식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시설증후군(Hospitalism, 시설에서 오래 생활하며 생기는 또 다른 형태의 정신적·신체적 증세)을 예방하고, 대상자가 사회생활을 폭넓게 영위할 수 있다.

‘주문을 잊은 카페’는 그동안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던 이들이 사회로 나와 짧게나마 경제생활을 겪어보고, 지역사회 구성원과 관계를 맺는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단기 커뮤니티 케어 체험’정도로 볼 수 있다. 2시간 남짓의 짧은 노동이었지만 일상을 영위하는 시설로부터의 작은 일탈이, 그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고령사회(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에 속하며, 2025년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 사회도 급속한 노인 인구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받아들이고, 노인 문제 역시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주문을 잊은 카페’는 커뮤니티 케어의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동서발전과 내와동산 노인요양원이 그 시작으로 ‘주문을 잊은 카페’를 열었고, 지자체와 대학 등 관·학으로 확산 시행될 예정이다.

연어를 위한 강, 철새의 도래지, 거북이 돌아오는 바다처럼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과 삶이 남아있는 터전에서 살아가고 나이들 수 있도록. 우리 사회에 조그만 쉼터 역할을 해줄 또 다른 ‘주문을 잊은 카페’들이 만개한 봄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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