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공개하며, 우리나라를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했다. 관찰대상국은 환율조작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계속 지켜봐야할 나라라는 뜻이다. 환율조작국의 전 단계로서 일종의 경고라고 보면 된다. 조건이 미리 규정되어있다.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거나, 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2%를 넘는 경우, 또는 외환시장개입 규모가 국내총생산 대비 2%를 넘는 경우다. 원래는 3가지 조건 가운데 2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지정되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한 가지 조건에만 해당이 되면 지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돈을 많이 벌어가거나, 외환시장에 돈을 많이 푸는 나라들이 대상이라고 보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 대한 판단인데 관찰대상국으로 유지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사실 당초 환율보고서는 4월에 나올 예정이었다. 한 달이 미뤄지는 걸 두고 시장에서는 말이 많았다.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미국이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물론 시장에서 벌어진 일만을 갖고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어려웠다. 중국 정부는 오히려 외환시장에 달러를 순매도했기 때문이다. 과도한 위안화 약세를 막기 위해 오히려 달러를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근거가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안 하는 나라는 아니다. 미국이 결국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협상의 판이 아직 깨지지 않은 상황을 감안했을 것이다.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원래 2016년 대선 공약사항이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환율은 양쪽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둔 영역이다. 미국이 아직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처럼 중국도 무역과 환율의 비연계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현재 중국 위안화 가치는 무역마찰의 상황을 알려주는 지표역할을 한다. 마찰이 심화되면 가치가 떨어지고 협상이 진전되면 가치가 올라간다. 중국의 외환 당국은 경제지표가 부진하면 절하, 개선되면 절상해 고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중국에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장단점이 다 있다. 당연히 가격을 낮춰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고 미국의 관세인상으로 받는 타격을 만회하는 방법이 되겠지만 자본거래 측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 우려가 높아진다. 위안화 국제화 등을 통해 중국의 대외 위상을 높이는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저런 측면을 모두 감안하면 결국 중국이 ‘1달러=7위안’선을 고수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힘의 한계도 있다. 작년 가을부터 중국 외환관리 당국은 가지고 있던 미국 국채를 조금씩 처분하기 시작했다. 올 4월까지 중국은 보유한 1조 달러 수준의 미 국채 가운데 700억 달러 어치를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이 팔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국으로서는 이런 조치도 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은 중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반응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 국채 수요가 증가했다. 미 국채값은 떨어지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중국은 미 국채를 사고 싶어 하는 다른 나라와 투자자들에게 좋은 일만 한 셈이 돼버렸다. 위안화의 신뢰성만 타격을 입었다.

물론 미국이나 중국, 어느 쪽이든 상식적이고 이성적, 합리적으로만 대응하리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포괄적 관세인상에 대응해 중국이 위안화 절하로 맞선다면 상황은 어려워진다. 당연히 원달러 환율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세계 경제에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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