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의 배전설비 협력사들이 기자재 발주 감소로 신음하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이 협력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계약한 물량을 발주하고 있지 않아서다.

한전은 매년 배전선로에 사용될 변압기와 개폐기, 전력량계 등 전력기자재를 연간단가 계약을 통해 협력회사로부터 구매해오고 있다. 1년간 구매할 제품의 전체 물량을 정해놓은 후 입찰을 통해 우수한 협력사와 기자재 공급가격을 정해놓는 방식이다. 한전 협력회사로 등록된 기업만 해도 수백여곳에 이른다.

한전이 공개한 올해 배전예산은 약 3조4300억원이다. 지난해(3조3000억원)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기자재 구매예산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6월 현재 한전이 구매한 기자재는 지난해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Ea타입 전자식 전력량계의 경우 한전은 올해 135만대를 구매하겠다고 5개 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6월 기준 누적구매량은 전체 계약물량의 14%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는 물론 예년 같은기간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줄어든 수치다. 보통 조기집행 등으로 상반기에 발주량이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감소한 구매량이다. 다른 배전기자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전이 하반기에 나머지 계약물량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행보임에 틀림없다. 남은 물량을 하반기에 ‘몰아주는’ 것도 문제다. 갑자기 물량이 쏠리게 되면 업체가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더 큰 문제는 지난해는 물론 예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발주량을 대폭 줄였지만 협력사들에게는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달 생산 계획을 세워야 하는 업체들로선 생산량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상반기 내내 공장을 놀려야 했다.

그동안 수없이 외쳐온 한전의 동반성장, 상생경영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예산을 줄이거나 협력사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