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호 센터장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신전력기기연구센터)
오연호 센터장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신전력기기연구센터)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간과해 오다 오늘날에는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까지 다가왔다. 가장 깨끗한 에너지로 알려져 있는 전기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전력기기에도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요소가 있다. 성능만을 최고로 추구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력기기의 설계요소가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일반적으로 친환경적인 설계요소는 비용은 높고 성능은 낮기 때문에 그만큼 전력기기 개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에서 어떠한 노력이 일어나고 있는지 '친환경 전력기기 기술', '전력 반도체 기술', '초전도 케이블 기술', '수소발전 및 수소 분산전원 기술' 등 4가지 주제를 통해 살펴본다.

(1) 친환경 전력기기 기술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눈앞에서 미래를 훔치고 있어요.”

작년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렸던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16살의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109개 나라의 대표에게 했던 연설 내용이다. 25년간 탄소 배출을 중단코자 세계 지도자들이 모여 논의를 해왔지만 탄소배출량은 오히려 더 늘어났고 지구온난화는 가속돼 그 피해는 툰베리와 같은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가됐다. 기존 시스템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지구온난화를 가속시키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북극곰, 바다거북, 펭귄의 다잉 메시지를 무시한다면, 이제 인류의 차례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대표적인 온실가스로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소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황(SF6)이 있다. 온난화에 기여하는 정도를 지구온난화지수라고 하며, 이산화탄소를 기준(CO2=1)으로 한다. 농업 활동이나 폐기물 처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은 21, 화학비료 및 동물의 거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아산화질소는 310, 에어컨 냉매제로 주로 사용되는 수소불화탄소는 1만1700,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과불화탄소는 9200, 전력기기, 반도체, 액정 판넬 제조공정에서 사용되는 육불화항은 가장 높은 지구온난화지수인 2만3900이다.

전력기기에서 SF6 가스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합성한 가스 가운데 전기를 통하지 못하게 하는 절연성능이 가장 탁월해 전력기기의 절연매질로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수십kA의 큰 전류를 끊을 때 발생하는 아크 불꽃을 억제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 1960년대 후부터 대용량의 차단기나 스위치기어에 필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높은 온실효과로 인해 최악의 지구온난화가스로 지정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력기기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는 SF6 가스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친환경적인 전력기기 개발을 요구 받게 되고, 개발자 입장에서는 전력기기 개발의 난이도가 훨씬 어렵게 됐다.

유럽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SF6의 유해성을 간파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가스를 찾고자 노력해 왔으나 성과는 크지 않았다.

최근 3M에서 SF6를 대체할 수 있는 후보가스로 Novec4710TM, Novec5110TM을 선보였다.

Novec4710TM의 경우 절연성능은 우수하나 지구온난화지수가 2200으로 매우 높기 때문에 CO2나 O2 등을 혼합하여 사용해야 한다. 이 경우 지구온난화지수는 400 정도로 낮아지지만 절연성능은 급격히 줄어든다.

Novec5110TM은 뛰어난 절연성능과 낮은 지구온난화지수 (1 미만)를 갖고 있지만 비점이 26.9℃로 매우 높아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기화시켜 CO2를 혼합하더라도 사용상에 제약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SF6를 대체할 수 있는 가스의 성능은 절연성능이 최소 SF6 대비 80%이상이어야 하고 지구온난화지수가 낮아야 하며(최소 500 이하) 비점이 낮아서 추운 날씨에도 액화되지 않아 절연성능을 유지해야 하고, 무엇보다 독성이 없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후반에 비록 비점이 20℃정도로 높지만 절연성능과 지구온난화지수가 뛰어난 CF3I라는 가스를 합성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독점생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왔으나 2010년대 초에 발암물질, 유전자 변형 물질이라는 것이 판명되면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늦은 2015년부터 전력기기에서 SF6를 대체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현존하는 가스 중 그나마 SF6를 대체할 수 있는 가스가 선진국의 Novec4710TM이고, 이 가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며 특허권과 기술종속으로 인해 이제 막 커지기 시작하는 친환경 전력기기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기술식민지가 될 상황이다. 따라서 외국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대체가스 개발과 이를 적용한 전력기기의 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과 한국화학연구원이 융합연구를 통해 SF6 대체가스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새로운 가스를 합성하고 이를 적용한 친환경 전력기기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 중에 있다. 이미 3가지의 가스가 합성됐고 올해 안에 새로 한 가지 가스가 합성될 것이다.

이러한 가스들에 대해 지구온난화계수 측정, 액화온도 측정 등의 친환경 특성시험과 전기적 절연시험 및 차단시험을 통해 새로운 친환경 전력기기로 세계기술을 선도하는 미래를 기대해 본다.

오연호 센터장 (한국전기연구원 전력기기연구본부 신전력기기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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