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시청율이 높은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시대마다 돈을 가진 사람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 간의 부패 고리를 파헤쳐 응징하는 내용이다. 돈이 있어야 권력을 움직일 수 있고 권력이 있어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회구조는 끝없는 부조리와 빈부격차를 만든다.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하는 지도층 인사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도심 미세먼지에 파묻혀 있다가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들여 마시는 느낌이다.

기부왕으로 꼽히는 억만장자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부액을 합치면 60조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들은 지금도 미국 400대 재벌들에게 전화를 걸어 최소한 개인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는 ‘기부서약’을 권유하고 있다. 그로 인해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도 52조원의 기부를 약속했다. 부러울 뿐이다. 그들의 롤 모델은 역시 억만장자 찰스 피니(Charles F. Feeney). 한 경제지에서는 한때 그를 돈만 아는 억만장자로 선정해 모욕을 주기도 했는데 1997년 면세점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찰스 피니가 경영하는 회사의 회계장부가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15년 동안 무려 4조 5천억 원이나 기부를 해왔던 것이다. 그는 85세가 되던 2017년까지 총 9조 5000억원을 기부함으로써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부모를 잘 만난 것도 아니고 좋은 시절에 태어난 사람도 아닌 찰스 피니는 6.25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하다. 1930년 대공항 시절에 태어나 세계 최대 규모의 공항면세점인 DFS를 공동 창업해 40대 때 억만장자가 되었지만 평생 임대아파트에 살며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생활 속에 남몰래 기부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겨왔다. 기독교도인 그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말씀에 기반에 자신의 기부를 스스로 세상에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남모르게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네팔에는 존경받는 라면왕, 초드리 회장이 있다. 2015년 네팔에 대지진이 났을 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수도를 떠나는 상황에서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카트만두로 급히 돌아와 국민들에게 살아만 있어달라고 방송으로 호소하며 카트만두 전역에 라면과 생수, 구호품을 공급하고 이재민들을 위해 집 1만 채와 학교를 지어주었다.

100여년 전, 조국을 위해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귀국해 기업과 학교를 설립한 유한양행의 고 유일한 박사도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최초로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 체제로 기업을 승계한 위대한 인물이다. 얼마 전 EBS 다큐에서 그 회사 신입사원이 인터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금수저가 경영권을 세습하지 않는 기업문화 속에서 자신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사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을 본받지 못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기업의 자금을 횡령하거나 기업경영권 승계를 위해 자녀에게 주식을 불법 증여하는 우리나라의 기업 총수들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지난 17년간 남몰래 65억원 기부한 이남림 할아버지는 최근 강원도 산불 피해자들을 위해 써달라며 재해구호협회에 2억원의 수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대문 시장에서 자수성가한 이 할아버지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부한 수십억원이 신도시 개발로 인한 토지보상금으로 땀 흘린 돈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가족들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재산분배를 놓고 형제와 자매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참담한 소송이 벌어지는 집안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번 강원 산불에는 국경을 초월한 기부도 있었으니 일본의 록밴드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가 강원도 산불 피해 지역 어린이들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선행을 실천해왔는데 특별히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자신도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자살로 겪은 아픈 기억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아픔을 좌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공감과 기부정신으로 승화한 것이다.

돈의 주인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이 돈을 다스리지 못하면 돈은 사람의 주인이 된다. 가난한 집안에는 돈이 없어 재산 싸움할 일이 없지만 돈이 많은 집안은 돈이 갈등의 중심에 있다. 종교기관도 예상했던 것보다 모금액이 많이 들어오면 사용처와 분배 방식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4월 4일 오후 강원도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모든 것은 잃은 이재민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한 달이 다 돼 가도록 온 국민들의 정성으로 모아진 420억원이 성금배분 기준과 방식에 대한 모금단체 간의 이견으로 거의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때는 모금액이 적어 분배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큰 금액이라서 그렇다고 하니 난감하다. 정부도 세금이 아닌 민간차원의 모금활동이라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부에 참여한 국민들의 안타까운 마음과 하루가 급한 이재민들의 고통을 감안해 하루 속히 합의가 이루어져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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