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작업이 개시되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에너지원 중 전력의 중요성으로 인해 여러 에너지계획 중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공개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안)은 국가 에너지정책의 핵심사항인 온실가스감축방안을 제9차 계획에 일임하고 있다. 제9차 계획은 국가 에너지대계의 근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의 숙명을 피할 수 없다.

제9차 계획이 그 계획대로 이행된다면 머지않아 전력산업의 유토피아를 이루어낼 것으로 예상된다. 제9차 계획은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다수의 발전공기업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지하고 청정발전원으로 각광받는 LNG발전소를 대체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심각한 국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감축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것이다. 아마도 전기요금 인상분은 미미하거나 크게 높지 않다는 전망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제9차 계획이 단지 유토피아적 전망만을 담는다면, 미래 사바세계의 전력생태계는 디스토피아적 파국으로 귀결될 것임은 자명하다. 현재 전력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예측력과 이행력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NIMBY의 확산은 신규 발전소의 건설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NIMBY의 대상은 태양광, 육상풍력, 해상풍력, 바이오매스, SRF, 연료전지, LNG 등 전원의 유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리고, 밀양송전탑 사태 이후 송전선로의 건설 또한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나아가 변동성전원인 재생에너지를 뒷받침해야 하는 전력계통망은 한국전력공사의 만성적자 구조 하에서 그 건설에 필요한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한전의 만성적자의 여파는 이에 그치지 않고 기존 발전소의 운영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발전공기업의 정산조정계수를 발전공기업이 손실을 입는 수준으로 조정하고 민간발전사에 지급하는 용량요금의 용량계수를 임의로 조작하려는 전력당국의 조치는 서곡에 불과하다.

최근 동해안 산불이 한전의 적자 때문에 발발했다는 어느 유튜버의 주장 그 자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전력생태계 참여자라면 한전의 만성적자와 그것이 야기할 한전과 발전사의 신규 설비투자 부족이 궁극적으로 초래할 미래의 디스토피아, 즉 오늘날 북한 철도와 같은 절망적 참상에 대한 묵시론적 예언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제9차 계획에 대한 또 하나 우려스러운 사항은 발전공기업에 대하여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지하면 LNG발전소를 대체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안은 발전사업세부허가기준 상 발전사업허가에 대한 특례를 통해 실현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특례는 모법인 전기사업법에 명시적인 근거를 두지 않은 점에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나 헌법의 법치주의에 근거한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된다는 법적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무엇보다도 전기사업의 발전과 전기사용자의 이익보호를 위해 발전사업자간 경쟁을 촉진하려는 전기사업법의 목적, 그리고 성실하고 효율적인 사업자에게 공정한 과정을 통해 발전사업의 기회를 부여하고자 마련된 허가제의 근본 취지를 해한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하여 석탄발전소의 조기 폐지가 정책적으로 긴요하다면, 발전설비 투자에 있어서의 효율성 경쟁을 왜곡시키는 특례에 의해서가 아니라 헌법의 재산권보장 원칙에 따라 법률에 근거하여 정당한 보상을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신규 LNG발전소 투자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부여되어야 한다.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 제9차 계획이 미몽에 빠지지 않으려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단지 유토피아적 전망만을 담을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로의 전환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전력산업구조의 변화를 예견하고 그 실행에 필요하고 적절한 수단과 조치를 제시하여야 한다.

한전의 전기요금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고, 분산형 전원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제안하며, 전력시장 내 경쟁체제와 가격체계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재정비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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