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경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성한경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지난 4월 26일 WTO 상소 기구에서는 한국이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50개의 수산물 금지한 조치에 대한 일본의 제소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최종 판정했다.

1심에 해당되는 WTO 전문가 패널에서는 일본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2심 WTO 상소 기구에서는 한국 측의 손을 들어줘서 수입금지조치가 유지되었다.

이렇게 1심 패널의 판정이 상소 기구에서 뒤집히는 일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 낸 정부와 민간의 노력은 높이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WTO 판정이 알려진 후 전개되는 상황은 우리가 마냥 승리의 기쁨에 도취될 일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일단 패소한 일본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 한국에 다시금 수입재개를 요청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이러한 행동들을 부질없는 생떼처럼 볼 수도 있지만, WTO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다.

요즘 어느 때보다도 WTO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WTO 탈퇴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WTO 개혁을 주장해 왔다. 미국은 WTO에 따른 자유무역의 혜택을 향유해 왔다.

그러나 WTO의 한 부분인 분쟁해결기구에서는 제소하기보다는 제소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고, 2017년 3월 기준으로 보면 제소당한 66건 중 단 6건만 승소했다. 그런 미국 입장에서 자국 행정부나 법원의 결정이 WTO 분쟁해결기구에서 번복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고, 그런 결정을 묵과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주장하는 WTO 개혁은 표면적으로는 WTO의 합의 정신을 준수하자는 것이지만, 결국 WTO가 지금보다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더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WTO에 대한 미국의 행동은 이미 일부 진행 중에 있다. 미국은 재판관에 해당되는 상소위원 7명으로 구성되는 WTO 상소 기구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상소위원의 충원을 막아 왔다. 그리하여 지금 단 3명의 상소위원이 일하고 있고, 올해 12월이 되면 그 중 2명도 임기를 종료하게 돼, WTO 상소기구가 불능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간 미국이 주도하던 WTO 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던 일본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WTO 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일본은 2016년을 기준으로 보면 WTO 상소기구에 제소를 많이 하는 국가였다.

그리고 작년에 미국이 무역보복조치들을 단행할 때 현재 WTO 규범을 준수하자고 주장했던 나라이기도 했다.

그랬던 일본이 이번 판정을 계기로 WTO 개혁에 동조하면서 WTO 개혁이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조력할 경우 지금까지 미국과 같은 경제대국의 무역보복에 대한 거의 유일한 견제수단이었던 WTO 분쟁해결절차가 더 이상 기능을 수행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번 판정과 관련해서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미국이 제기한 WTO의 문제점 중 하나는 WTO 상소 기구의 과거 판례가 향후 판결에 인용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서 우리는 수입금지 조치가 미래에 닥칠 위험까지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을 인정해 줬던 과거 WTO 판례의 덕을 톡톡히 본 면이 있다.

현재 EU도 미국 입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고, 이번 판결이 일본까지 그렇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WTO 상소 기구가 그런 방향으로 개편된 이후 일본이 새롭게 수산물 수입 건을 제소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WTO 개혁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한국이 미국, EU, 중국과 같이 WTO 내의 논의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WTO 개혁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 개혁방안들이 단순히 균형자적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검증된 연구에 기반한다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개혁방안들이 우리의 이해관계를 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 입장에서는 향후 정책 집행에서의 세심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비록 이번에 승소하기는 했더라도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집행하는 정책들이 특정 수입품을 차별하거나 단순히 정치적인 혹은 정서적인 이유로 명확한 과학적 근거 없이 수립되거나 집행되었다고 판단될 여지가 없는지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

모쪼록 이번 승리가 한국이 선진통상국가를 넘어 통상강국으로 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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