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세계무역기구, WTO가 일본 후쿠시마 주변 수산물의 수입금지와 관련한 분쟁에서 우리나라의 손을 들어줬다. 방사능 오염 우려가 있어서 수입을 하지 않는데 이게 부당한 무역제한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워낙 1심에서는 우리가 이미 졌었기 때문에 2심의 승소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반발도 좀 있는 모양이다.

최근 WTO는 의미가 있는 판결을 계속 내놓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분쟁에서는 미국이 이겼다. 중국이 미국 산 쌀과 밀, 옥수수에 관세할당제를 적용한 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관세할당제는 수입에 일정한 물량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상 수입되면 높은 관세를 매기는 제도다. 중국 정부는 비록 유감이지만 규칙을 존중하며 절차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반가워한 것은 물론이다,

많은 나라가 분쟁이 생겼을 때, 아직은 일단 WTO를 통해 해결을 시도한다. 심지어 미국도 중국과의 분쟁에서처럼 필요한 경우에는 WTO에 의지한다.

WTO는 세계적으로 무역장벽을 헐고 자유무역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보호무역을 취하는 나라에는 불이익을 주며, 국가 간 무역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원래 미국의 뜻을 반영해 만들어진 기구이기도 하다. 미국은 90년대 초, 일본 제조업에 타격을 받아 경기가 어려워지자 2차 세계 대전이후 세계 무역질서를 규율했던 GATT 체제를 이탈하려고 했다. 이를 막으려고 미국의 뜻을 반영해 농업과 서비스 개방 등을 포함한 자유무역체제로 확대해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WTO다. 상품에 국한됐던 무역규범을 서비스와 지식재산권 분야로 확장하면서, 상소기구를 설치하고 분쟁해결제도도 개선했다. 94년에 출범해 올해로 25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계도 뚜렷하다. 당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진행과정에서 WTO가 한 일은 없었다. 실제로 WTO 조약을 가장 많이 위반하는 나라도 아마 미국과 중국일 것이다.

미국의 안보를 위해 부과했다고 주장하는 철강 관세, 지금도 검토하고 있다는 자동차 관세, 그리고 미국만의 기준으로 외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찾아 보복하겠다는 미국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조치들은 모두 WTO 체제에 부합하지 않는다. 중국의 무역 왜곡 정책에 대한 WTO의 통제도 실패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불공정 관행을 시정하는데 WTO 규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지적재산권 문제 정도뿐이라고 한다. 사드배치이후 중국이 우리나라에 했던 보복조치들도 WTO가 해결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리는 WTO에 문제를 갖고 갈 생각도 감히 하지 못했다.

보호무역주의 물결 속에 세계무역기구 제소는 급증하는 추세다.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만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개혁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각자가 생각하는 개혁의 방향이 다른 걸 감안하면 전망은 밝지 않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이나 유럽 등의 기존 선진국과 중국이나 인도처럼 대국으로 부상한 신흥국들 간의 힘겨루기가 문제다. 실패하면 아예 WTO 체제를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무역 규칙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미국 트럼프대통령은 취임 초 한미자유무역협정과 함께 WTO 탈퇴도 결심했었다고 한다. 미국으로서는 모든 결정에 회원국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못마땅하다. 미국의 태도는 물론 이율배반적이다. 자기가 만든 체제를 자기가 부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체제가 무너지면 피해는 모든 국가에 전가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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