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면적이 사상최대 규모로 알려진 고성 산불 이후 개폐기 변압기 등 전력기기 내구연한에 대해 말이 많다. 사고 원인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 것도 확인된 게 없다. 다만 전기계를 필두로 여러 곳에서 ‘차제에 전력기기 내구연한에 대한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배전설비를 거쳐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수용가에 들어간다. 국가 송배전설비를 총괄하는 게 한전이다. 한전은 송배전설비를 설치 운영하기 위해 전력기기 제조업체에서 전력기기를 사고 전기공사업체에 시공을 맡긴다. 한전은 사실상 국가 송배전시설 전부를 독점 운영하고 있어 한전의 결정이 국가 송배전사업을 결정짓는 잣대가 된다. 한전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대기업은 물론 중소 전력기기업계는 물론 전기공사업계의 농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력기기의 내구연한 즉 수명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전력기기 제조업체와 전기공사업체의 일감과 직결돼 있다. 내구연한을 줄이게 되면 그만큼 교체시기가 빨라져 더 많은 기기가 필요하게 되고, 늘리게 되면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다. 전기공사업계 역시 마찬가지다.

전력기기마다 내구연한이 다 다르게 정해져 있다. 기기 설치 장소와 쓰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기기라도 설치 조건의 호불호에 따라 수명이 다른 것이다. 물론 공항 등 자체적으로 특정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일부 공기업은 임의로 정해놓은 사용연한에 맞춰 일괄적으로 기기를 교체하고 있다. 명분은 안전사고의 싹을 아예 자르기 위해서다. 설비 운영의 방점을 안전에 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을 아직까지 진단에 따라 수명을 달리하고 있다. 안전과 경제성 모두들 챙기기 위해서다. 설계수명이 다 된 원전을 폐기하기 않고 고쳐서 더 가동하고 있는 것과 같다. 또 이 방식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활용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해도 모두 옳다고 단정 할 수는 없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모든 건축물의 내진설계 기준이 상향된 것은 수많은 예 가운데 하나다.

세상은 변했다. 어쩌면 얼마나 더 오래 사느냐보다 얼마나 더 건강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삶의 기준이 된지 오래라는 얘기다. 물론 전력기기 하나하나에 대한 수명과 사고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는 거의 없다. 정해져 있는 내구연한을 지켜야 안전한 것인지, 내구연한을 줄이거나 늘려도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 명쾌한 데이터도 없고 연구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상식적인 사고로만 생각할 때 기기의 기술 구조적 결함만 없다면 최대한 수명을 짧게 잡아 자주 교체하는 게 안전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경제성은 배제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삶의 질이 좋아지면서 국민들의 눈높이 화살표는 오른쪽 상향이다. 국민들이 납득하고 만족하기 위한 모든 기준은 과거를 부정하고 있다.

전력기기 내구연한의 합리성,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다. 더구나 지금 국회에는 ‘전력기기 내구연한 법제화’ 법안도 발의돼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