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제조업계, 막강·비대해진 유통에 '골머리'
낮은 동가 때 매입 후 동가 오르면 시세보다 싸게 판매 … 가격 좌지우지
작성 : 2019년 04월 04일(목) 11:58
게시 : 2019년 04월 04일(목)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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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팔 수도 없고, 그렇다고 팔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대형 유통업체와의 거래 관계를 두고 최근 전선 제조업계에서 흘러나오는 하소연이다.
유통 기업들의 몸집이 점점 커지고 반대로 수요는 줄어들면서 중견 전선업체들이 유통업체의 가격정책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와 유통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곳은 원자재를 구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다.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의 가격정책에 따라 대응 전략을 세우지만, 최근 전선업계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관계가 역전되는 모양새다.

막강하고 비대해진 유통업체에 제조업체들이 휘둘리는 '역전 상황’은 근본적으로 전선 공급과잉 현상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유통업체들이 구리 가격을 두고 구입량과 판매가를 조정하는 능력이 생긴 것도 한몫하고 있다. 유통업체가 구리 가격이 낮을 때 싸게 사들인 재고를, 구리 가격이 올랐을 때 적정 시세보다 훨씬 싸게 팔아 가격 형성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구리 가격이 낮을 때 제조업체에 낮은 가격을 요구, 대량으로 구입했다가 구리 가격이 오르면 이 재고를 낮은 가격에 박리다매로 판매한다”며 “터무니없이 낮은 공급가격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조업체에 유통업체는 거래처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장에서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제조업체는 구리 가격이 오른 만큼 판매 단가가 자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시장에서는 낮은 동가를 기준으로 마진이 책정된 유통기업의 재고와 싸워야 하는 셈이다. 결국 과거에 판매한 제품이 어느 시점엔 부메랑이 돼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제조업체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다. 유통과의 거래를 줄이거나 중단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평균 매출 규모 1000억원대에 달하는 중견 전선업체는 유통에 납품하는 비중이 많게는 매출의 10~20%에 달한다.
매출이 급감할 경우 일부 업체들은 고정비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지고 은행으로부터 대출상환 압박을 받는 등 경영난에 직면하게 된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공장 가동률이 60~70%만 돼도 먹고살 수 있었지만, 가격이 크게 떨어져 이익률 1%를 놓고 싸우는 현재는 가동률이 90%는 돼야 한다”며 “유통업체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해도 대안이 없기 때문에 거래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통업체에 불만을 제기할 경우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간혹 나오고 있다.
A 제조업체는 최근 ‘적정 가격’을 요구했다가 유통업체로부터 1~2개월간 거래 중단 조치를 당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체 한 곳이 제조업체 4곳 정도와 거래를 한다고 볼 때, 제조업체 한 곳이 원하는 가격을 맞춰주지 않을 경우 거래를 중단하고 새로운 업체와 거래를 시작한다”며 “새로운 업체는 시장 진입을 위해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 유통업체는 이를 근거로 타 업체에 더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공급과잉을 해소해야 하는데, 출하량 조정도 일종의 담합이기 때문에 각자 유통업체에 적정 가격을 요구하고 거래가 중단된 틈새를 파고들지 않는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궁극적으로 줄어든 수요에 맞게 업계 전체의 공급량이 떨어져야 한다. 자체적으로 몸집을 줄여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유통 마진은 기본적으로 3% 내외에 불과한데, 엄청난 자본력이 아니라면 가격 질서를 흔들 만큼 재고를 보유하기 어렵다”면서 “갑을관계가 역전됐다는 얘기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의진 기자 기사 더보기

ejin@ele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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