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가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3일 이 정책 재검토를 위해 국민·지역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주관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칭, 이하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7월, 전 정부가 수립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산업부가 당시 수립한 정책이 국민, 원전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이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져 계획대로 추진할 경우 갈등 등 잡음의 소지가 클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는 지난해 5월 이 정책 재검토를 위해 원전지역·환경단체·원자력계·갈등관리 전문가들로 고준위방폐물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구성해 11월까지 6개월간 운영했다. 여기서 취합된 결과가 중립적 인사 15인 이내로 위원회를 꾸리고 이들에게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부는 언제까지 위원회를 구성해 어떤 과정을 거쳐 의견을 수렴할지 등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얼마나 수렴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

전 정부는 2014년 10월부터 무려 20개월 동안 공론화를 거쳐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핵심은 2053년부터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땅속에 묻는 영구 처리시설을 가동하는 것이고, 이 시설물이 들어설 부지를 12년간 부지공모와 주민의사 확인, 심층조사 과정 등을 거쳐 확정하는 것이다. 또 올해부터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월성 원전은 단기적으로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도 이 계획에 포함돼 있었다. 절차법까지 만들어 국회에 발의된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기본계획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정책을 기약 없이 재검토해도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는 여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르면 올해 말 월성 원전(경북 경주)을 시작으로 2024년 한빛·고리 원전(전남 영광·부산 기장), 2037년 한울 원전(경북 울진)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임시저장시설(수조 등)이 포화될 전망이다. 포화 이후에 대한 대책은 현재로선 없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원전의 부산물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시 쓸 수 있는 연료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한 원전국들이 이 부산물을 영구폐기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어딘가에 보관해야 한다.

주요 원전국들이 가장 흔하게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해 거기에 보관하는 것이다. 또 이것이 현재로선 가장 합리적인 방안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부터 미루고 미뤄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가 이젠 발등의 불이 돼 있다. 그러나 발등에 불은 끄지 않으면 화상을 입는다. 화상에 그칠지 발을 절단할지는 정도에 따라 다르다.

많은 반원전·환경단체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후 정책을 수립해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의 의견을 어떻게 얼마나 수렴하는 것이 충분한 것인가. 의견을 수렴한다며 40년을 끌어왔는데, 아직도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는 정부 발표를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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