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정양호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할 때 애용하는 것 중 하나가 ‘인생은 정·비·공’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고, 공짜도 없다는 말이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금까지 최선의 삶을 살았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할 자신이 없다.

‘미투 운동(#Me too)’이 확산되면서 과거 관행이란 이름 아래 행해졌던 수많은 잘못된 행동들이 드러나고 처벌받는 것을 보면서 인생에 있어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과거 겨울철 삼한사온 현상이 최근에는 삼한사미로 바뀌면서 이젠 깨끗한 공기가 더 이상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공공재가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정말로 인생은 정비공이다.

얼마 전에 자동차 세일즈를 하는 친구가 30년 동안 3000대를 판매해 판매명장에 올랐다. 매년 평균 100대의 차를 팔아야 도달 가능한 수치다. 이 친구의 판매명장 기념식에 참석해서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인생은 정비공이란 사실을 전해 줬다. 수많은 명장이 있음을 생각한다면 이 친구가 걸어온 길이 명장이 되는 유일한 정답은 아님은 자명하다.

필자는 이 친구의 고객으로서 지금까지 차를 몇 대 구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고객관리 방식을 지켜보게 됐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자동차에 관한 문의에 모든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설명해 주는 자세였다. 내 편에서 문제를 생각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동문들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발품을 팔고, 어려운 사연을 보면 앞장서 돕는 그런 친구였다. 자동차를 많이 판매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품성이 명장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인생도 역시 정비공이다.

국가 차원에서 정비공 문제를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 잡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으로 경제성장을 해 왔다. 선진국의 발전경험이라는 정답을 보고 ‘빨리빨리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따라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민소득 3만불, 인구 5000만을 자랑하는 30-50클럽에 가입했다. 이젠 선도자(first mover)가 돼 어디로 가야할 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창조의 시대,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은 저 멀리 앞길이 훤히 보이는 평탄한 길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분별할 수도 없는 눈 덮인 산길이다. 때로는 눈앞에 큰 장벽이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더 이상 주어진 정답이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젠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충분한 협의를 거쳐 컨센서스(consensus)를 이루고 방향을 정한 뒤 가는 것이 장기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기업경영이나 정책결정과정에서 투명성 확보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요소가 됐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면서 한 개인에 의해 모든 소식이 순식간에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전달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이젠 분식회계나 밀실행정 같은 과거의 관행이 더 이상 통할 수 없다. 단기간 비밀유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 정도 경영, 정도 정치, 정도 행정이 답이다. 의사결정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집단지성을 활용해 최선의 결론에 도달하는 그런 문화가 사회 곳곳에서 형성돼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본다면 그런 일도 가능하겠지만 시야를 넓혀 장기간에 걸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성장은 그만한 대가를 요구한다. 경제적 빈곤을 넘어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를 얻는 대가로 우리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을 잃어버렸다.

주변의 친구들은 봄날에 이런 미세먼지가 계속된다면 이민이나 장기간 해외체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야단들이다. 이제는 기후변화나 미세먼지 문제와 같은 환경 이슈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그럴 용의도 있어야 한다.

에너지 믹스를 바꾸어 친환경에너지 사용을 늘리기 위한 투자비용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원 확대를 위한 연구개발투자도 늘려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 앞에는 하나의 정답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만의 생각이 옳다고 고집부릴 일도 아니고, 맡은 일을 비밀스럽게 추진할 것도 아니다. 충분한 토론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된 부문에 대해서는 합당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도 해 나가야 한다. 결국 창의, 개방, 소통, 협업, 배려 이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인생은 정비공’이기 때문이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정양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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