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홀에 설치된 사이리스터 밸브.
밸브홀에 설치된 사이리스터 밸브.

비가 쏟아지던 20일 찾은 경기도 평택의 고덕은 신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분주했다. ‘Upgrade your life 고덕국제신도시’라는 슬로건은 건설현장 군데군데 달려있었다. 건설 중인 신도시답게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 인부들이 보이는 정도였고 도로에는 덩치 큰 화물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주인을 기다리는 새 아파트 단지들도 눈에 띄었다. 임시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엔 거대한 반도체 공장, 그 옆엔 고덕 변환소가 있었다.

고덕 HVDC 건설 현장에서 바라본 반도체 공장은 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흐린 날씨 탓에 건설 중인 공장 내부에는 조명들이 켜졌고 공장 위로 수십 대의 크레인들이 가지를 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현재 이곳에 고덕 전체 면적의 34%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단지를 짓고 있다. 3, 4기 라인까지 포함하면 평택에 들어가는 투자금만 100조 원에 달한다. 현재 고덕에 불고있는 건설 열풍도 여기서 비롯됐다. 경기도는 2공장이 들어서면서 163조원의 생산유발효과가 발생하고 44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의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공장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고덕 변환소는 삼성 반도체 공장 유치를 이끈 핵심 유인 중 하나다.

500kV 북당진~고덕 HVDC 건설사업은 총사업비 1조 3598억원이 투입, 충남 북당진변환소와 경기도 평택 고덕변환소를 건설하고 35km에 달하는 구간을 HVDC 지중케이블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국내 최초의 육상 HVDC 프로젝트로 1단계 완료 시 1.5GW, 2단계 완료 시 총 3GW 규모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당초 계획은 당진화력, 태안화력, GS EPS 등 충남 서해안 지역에서 발전된 전력을 서안성까지 HVDC로 지중화해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것이었지만, 삼성전자가 고덕 반도체 공장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량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에너지 기지’가 필요하게 됐다.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안정적인 전력 수급이 필수적이다.

이에 계획을 수정해 고덕까지만 HVDC로 건설하고, 고덕 변환소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HVDC를 통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발전기를 바로 곁에 두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고덕 HVDC 건설현장은 주기기 설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변환소 한 쪽에는 방호벽들 사이사이에 변환용 변압기들이 설치돼 있었고, 제어 케이블과 광케이블 포설을 위한 개구부들도 안전덮개에 덮여 있었다. 이 주변에는 주황색 라바콘들이 줄지어 놓여있다. 아직 설치되지 못한 부속기기들도 적재돼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3월 기준 고덕의 HVDC 1단계 공정률은 90%다. 주기기 설치가 대부분 마무리 됐고 변환소 내 DC부속설비 설치와 제어케이블 포설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그에 비해 당진은 3월부터 주기기 설치가 이루어져 공정률이 70%에 그치는 상황이다.

전상준 한국전력 서남해변환부 부장은 “당진시와의 법정 공방으로 공사가 1년 반 가량 지체됐다”며 “북당진 변환소는 사이리스터밸브와 변환용 변압기를 비롯한 다양한 HVDC설비들의 공사가 동시에 이뤄져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부장은 또 “4월 말 당진 쪽 해저터널 공사가 마무리돼 해저구간이 관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환소의 DC홀 안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과 문어 모양의 거대한 평활리액터(smoothing reactor)가 한눈에 들어왔다.

변환소 한 층의 높이는 22m로 아파트 8~9층 수준이다. 이 높이를 견딜 수 있도록 철제가 사용돼 차폐 현상이 생겨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DC홀 안쪽에 자리 잡은 평활리액터는 아파트 6층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이승철 한국전력 서남해변환부 대리는 “평활리액터는 맥류라는 크기가 계속 변화하는 성분을 평활 시키기 위해 사용된다”며 “쉽게 말해 불완전한 직류를 평활시켜 깨끗한 직류를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DC홀 옆 공간에는 밸브홀이 자리하고 있었다.

밸브홀에는 사이리스터 밸브 여러 대가 천장에 설치돼 있었다. 사이리스터 밸브는 변환소의 핵심 설비로 교류를 직류로, 직류를 교류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 밸브에서 발생되는 열을 식히는 아이보리색 수냉 배관도 눈에 들어왔다.

은색 기둥의 공기정화 필터도 벽면 곳곳에 설치돼 있었다.

전 부장은 “사이리스터 밸브는 먼지에 취약하기 때문에 공기정화 필터를 통해 공기를 투입하며, 또한 실내의 공기압력을 외부보다 높게 유지하는 등 먼지가 들어오지 않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2층 제어실에서는 사이리스터 밸브가 설치된 공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제어케이블과 연결된 제어 패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외부 AC설비들의 기기동작 등의 상태를 파악하는 모자익반도 설치돼 있었다.

변환소를 나서자 빗방울이 떨어졌다.

변환소 건너편에 사무실 및 홍보관으로 쓰이게 될 사무동과 창고가 위치해 있었다. 두 건물을 지나 걸어가면 변환용 변압기(C.Tr), AC필터, GIS 등이 설치된 큰 부지가 나온다. 넓은 부지에 구역을 나눠 설치돼 있다.

이승철 대리는 “변환용 변압기는 교류전압을 변환해 직류전압을 공급하고 교류와 직류시스템을 분리하는 역할을, AC필터는 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를 제거해 기타 기기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동일 용량의 AC변압기보다 크기가 훨씬 크다고 한다.

이곳에 설치된 GIS(가스절연 개폐장치)는 차단부가 정격이 일반 AC변전소의 GIS보다 높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GIS는 일반적으로 발전소나 변전소에 설치되는 전력 설비의 주 보호장치로 정상개폐는 물론 고장 발생시에도 과도한 전류를 신속하게 차단시켜 전력계통을 보호하는 장치다.

AC필터.
AC필터.

(인터뷰) 전상준 한국전력 서남해변환부 부장

‣북당진~고덕 구간을 HVDC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이 건설의 애초 목적은 충남 서해안에서 발전되는 765kV급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이 765kV급 초고압 교류송전의 경우 철탑의 규모가 워낙 큰데다 전자파 논란도 있어 주민수용성이 낮아 건설이 쉽지 않다. 주민들은 지중화라도 해주기를 바라지만, 765kV AC는 현재 지중화를 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 500kV가 최대다.

이에 정부와 한전은 전압을 낮추면서도 동일한 전력을 보낼 수 있는 HVDC를 북당진-고덕 구간에 적용한다. 500kV HVDC 선로는 지중화도 가능하면서 765kV 용량을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터널굴진에서 공사기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해저 구간에 터널 굴진 작업을 진행학 있는데 예상보다 지반이 딱딱해 공사기간이 늘어났다. 초반에는 하루에 7m씩 나갈 수 있을 거라 예측했는데 막상 파보니 5m가 평균치다. 최대한 단축공정을 추진하고 올해 상반기 여건을 고려해 준공을 조정할 계획이다.

‣삼성은 고덕 변환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전력을 받고 있나. 또 앞으로 얼마나 받게 되나.

- 지난해 154kV 송전선로를 통해 삼성전자는 계약전력 60만kW를 사용했고, 올해에는 계약전력 85만kW가 공급될 예정이다. 현재 추진 중인 고덕 변환소 2단계 및 서안성 송전선로가 준공된다면 최종적으로 2GW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