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만태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18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1349달러로 전년(2만 9745달러)보다 5.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달러 기준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이 선진국의 관문으로 해석되는 3만불을 처음으로 돌파한 것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국민이 국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의 총합을 인구 수로 나눈 값이다.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소득 67달러에서 시작한 우리나라는 1977년 1000달러를 넘어섰고, 1994년에는 1만 달러를 넘어서는 급속한 성장을 일궜다. 이후 성장 속도가 다소 둔화돼 12년만인 2006년에 2만 달러를 넘었고, 다시 12년이 지나 3만 달러 고지를 밟았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 진입은 그 자체만으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3만불 이상 국가는 전 세계 20여개 국에 불과하다. 더구나 우리나라가 인구 5000만명 이상이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는 ‘30-50 클럽’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가입한 것은 그만큼 국제적 위상이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1992년 일본에 이어 독일(1995년), 미국(1997년), 영국(2002년), 프랑스(2004년), 이탈리아(2004년) 등이 차례로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달성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소속으로 서방 주요 7개국(G7) 멤버들이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박수만 치고 있기에는 최근 대내외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최근 세계경제 성장세 둔화, 미·중 무역전쟁, 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 중국경제의 추격으로 우리 주력품목의 경쟁력 약화, 양극화와 소득 불균형, 생산성 증가 둔화, 과중한 가계 부채,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보다 앞서 ‘30-50 클럽’에 진입한 미국, 일본, 독일 등은 수년 전부터 산업 발전 전략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이를 테면, 미국의 첨단제조업파트너십, 일본의 신산업구조비전, 독일의 하이테크전략, 인더스트리 4.0, 국가산업전략 2030, 디지털전략 2025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제조 2025, 일대일로 등이 있다. 지금 우리는 축배를 들며 안주할 상황이 아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7%를 기록하여 ‘2년 연속 3%대 성장’은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미국(9년), 영국(11년), 독일(5년), 일본(5년)보다 2만불에서 3만불까지 도달하는 데 상대적으로 오래 걸렸다. 경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가 지속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올랐다가 다시 고꾸라진 국가들도 있다. 즉, 스페인, 그리스, 키프로스 등은 3만불을 넘어섰다가 재정위기를 겪고 2만불 대로 추락하여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은 1995년 3만불을 넘었으나 1998년 2만불 대로 추락한 뒤 2004년에야 3만불 대로 복귀했다.

국민소득 3만불 시대는 우리에게 질적 성장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근본적인 경제 체질을 개선해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적극적인 신산업 발굴로 새로운 도약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산업 발전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민·관이 적극 참여하여 충분한 협의를 거친 후에 최종안을 도출하며, 전략 실행에도 전력을 기울인다. 일본은 산업 발전 비전 준비과정에서 자국의 강·약점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토대로 중점 전략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독일은 여전히 제조업을 강조하면서 제조업 경쟁력을 독일의 미래까지 연계하고 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독일은 미국에 뒤진 AI분야 연구를 위하여 프랑스와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도 산업의 현재와 미래 경쟁력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토대로 이전과 차별화되는 메가트렌드, 국내외 경제산업 여건 변화, 미래 수요변화 등을 고려한 산업 발전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 단독으로 추진하기에 미흡한 분야가 있다면 선진국들과의 협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 연례협의 한국 미션단이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견조하다면서도 중단기적으로는 역풍을 맞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션단은 특히 한국의 성장이 투자와 세계 교역 감소로 둔화하고 있고, 고용 창출 부진과 가계부채 비율이 높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홍남기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모든 경제 주체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실”이라며 “3만 달러 시대를 우리 경제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현 시점에서 축포만 터뜨린다면 다시 2만 달러대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정부는 물론 모든 경제 주체는 환골탈태가 절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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