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도 없이 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합의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를테면 조건 없이 이혼하자는 건 아닌데, 합의는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해서 미루는 것도 싫다는 식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협상안이 표류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영국이 바라는 것은 탈퇴는 하지만 회원국으로서의 혜택은 유지하는 것이다.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다. 불가능한 걸 바라고 있으니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영국은 손에 쥐는 것 없이 EU를 떠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진행이 되든 영국은 가장 먼저 EU를 탈퇴한 회원국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그 후, 과연 EU는 어떻게 될까. 소비에트연방은 1991년 붕괴했다. 역사는 흔히 반복된다고 한다. 그럼 이제 EU도 붕괴하는 것일까. 마침 5월에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기도 하다. 통합 유럽의 꿈은 이제 영국의 탈퇴를 계기로 사라지는 것일까.

EU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어떤 식으로 대응하든 EU가 새로운 길을 시급히 열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영국의 탈퇴가 EU에 치명적인 실패는 아니다.

사실 영국은 유럽의 흐름에 동참했던 적이 별로 없다. 영국은 항상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시선을 가진 나라였다. 영국의 유럽 내 독자 노선 전략은 1957년 로마조약에 불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유럽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기틀이 됐던 로마조약에 참여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그리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등 6개국이었다. 영국이 뒤늦게 가입을 원하게 됐던 것은 경기침체 때문이었다. 영국 상품에 대한 유럽경제공동체의 관세 문제로 영국 정부는 1963년, 1967년, 1973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유럽경제공동체에 뒤늦게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게 됐다. 세 차례나 가입을 신청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은 프랑스 때문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 가입에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다. 괄시와 수모를 받아가며 어렵게 가입해놓고도 영국은 가입 2년 만인 1975년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국민투표 결과 잔류에 대한 지지가 많아 브렉시트는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이후에도 영국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1992년 마스트리트 조약이 대표적이다. 유럽의 단일 통화로 유로화 도입 논의가 시작됐지만 영국은 경제 주권을 앞세워 결국 유로화 도입을 거부하고 파운드화 체제를 유지했다.

EU는 단순한 경제공동체가 아니다. EU는 경제적 통합을 꾀할 뿐 아니라 회원국 간의 우호 증진과 항구적 평화를 추구하는 수단이었다. 회원국 합의의 초석인 ‘네 가지 자유’는 물품과 서비스, 자본, 그리고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다. 자체적인 의회가 있으며 회원국 국민의 직접투표로 의원이 선출된다. 사법재판소, 대부분의 회원국에서 통용되는 단일 통화, 독자적 중앙은행도 있다. EU는 단순한 관세 동맹을 뛰어넘는, 정서적인 유대감을 기반으로 한 야심 찬 정치 프로젝트다. EU는 이미 사실상 하나의 통합된 나라처럼 보인다. 시장규모가 20%쯤 줄어들겠지만 영국이 빠진다고 해서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수준 이상의 통합을 위한 작업도 일단 멈추게 될 것이다. 세계무대에서 유럽이 한 목소리를 내는 일 역시,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유럽은 통합의 가치와 각국의 경제적 이해 사이의 충돌이라는 딜레마를 해결해야 한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쉬운 일도 아니다. 흔히 세계무대에서 유럽의 위상에 대해 경제적으로는 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난쟁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유럽은 정치적으로 거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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