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 기자
정현진 기자

최근 한 원자력계 행사에서 만난 전문가는 ‘공론(公論)’이란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돼있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다. 1392년 조선 건국 첫해 태조실록에 이미 ‘공론’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등장했다며 시대를 관통해 공론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그는 소회(所懷)를 밝혔다.

수년간 원자력계를 둘러싼 공론화 성과를 살펴보면 가히 진보·민주적이라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성급하게 드라이브를 걸 때쯤, ‘공론화’는 적절히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

공론화위원회 위원의 전문성 결여와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3개월이라는 짧은 공론화 기간, 이해관계자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 시민참여단 선발 과정 등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첫 시민참여를 통해 나온 의견수렴으로 당위성(當爲性)을 획득하며 건재한 촛불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신고리 5·6호기가 건설을 재개, 원자력 산업계는 그나마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원자력계에서 공론화를 통해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는 단연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다. 지난 40여년 간 갈등을 빚어왔지만, 참여정부 시절 주민투표를 통해 경북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유치하기로 한 결정 외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전국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몇몇 곳이 포화 상태에 접어들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하겠다고 밝혔다. 유명무실하게도 출범이 한 달씩 늦춰지더니 이제는 올해 안에 출범하기를 바란다는 다소 힘 빠지는 소망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현재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전담팀(TF)이 구성됐지만, 인력을 파견한 각 기관은 말을 아끼고 있다. 산업부가 베일을 벗기고 나서지 않는 이상 미세먼지로 뒤덮인 요즘 하늘처럼 사실상 실체는 보이지 않고 시야는 흐리기만 하다.

각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난제라 말한다.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완공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해결 방안 마련이 어려웠던 만큼, 시민의 뜻을 십분 반영하고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의 결정을 바탕으로 국내 가장 적합한 지역에 고준위방폐장 건설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더는 ‘화장실 없는 집’에 살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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