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현 영남본부장
윤재현 영남본부장

구입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생겨 회사의 고객센터나 공공기관의 콜센터로 연락하면 상담사와 통화하기 전에 ‘지금 전화 받는 사람은 여러분의 아들 딸 일 수 있으니 예의를 지켜 달라’는 안내음이 나온다. 백번 타당한 말이다.

고객센터 직원들은 감정노동자로 별난(?)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소비자들이 잘못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일부 상담사들은 상담 도중 발생한 충격으로 정신과치료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을 소비자 혹은 콜센터 이용자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이를 운영하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구입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면 그것은 1차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한 기업의 책임이다. 그래서 고객센터에 연락하는 소비자는 유쾌한 기분으로 전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대하는 첫 음성은 ARS 번호를 누르라는 기계음이다. 어떤 기업은 ARS번호가 9가지인 경우도 있다. 그냥 바로 연결해서 그 상담사가 답변을 할 수 없다면 다른 상담사로 연결하면 안 되는 걸까?

특히 전국번호인 1588-****는 전화부가서비스로 무제한 요금제를 채택한 소비자도 이용료를 납부해야 할 수도 있다.

자기 돈 내고 통화연결도 안되고 그러면 상담하기 전에 화부터 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왜 기업은 그 회사 제품을 구입한 잘못밖에 없는 소비자들에게 인내심을 요구하는 걸까?

그리고 나이 많은 노인들은 ARS 누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은 더 힘들다.

전화연결이 다 힘든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려고 홈쇼핑에 전화할 때는 심야시간임에도 불구, 전화연결이 잘된다.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 ARS번호를 9개나 제시하는 홈쇼핑은 없다. 쇼호스트가 일부 제품에 대해 전화연결이 안된다고 하는 엄살 섞인 멘트를 간혹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멀쩡한 소비자들을 갑질 소비자로 만들거나 별난 사람으로 만들고 ‘남의 집 귀한 자식인 콜센터 직원을 정신과 치료받게 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콜센터에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 일선 상담사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거나 상담사의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콜센터는 하루에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 안 받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소비자들이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다. 상담사들의 답변 내용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소비자들의 클레임이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고객센터 직원들은 규정에 따른 기계적인 답변만 늘어놓는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이나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하면 해결이 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일선의 상담사들의 권한은 적고 기관을 통한 민원을 처리하는 직원은 직급이 높거나 권한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원을 제기하지 않고 민원을 제기한다고 엄포만 넣어도 팀장이 전화를 받고 해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팀장은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떼를 쓰거나 상식에 맞지 않는 경우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일선 상담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재량권을 확대하고 인원을 늘려야 한다.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유가 되는 기업들이나 공공기관은 불필요한 행정 인력 대신에 일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상담사들을 증원하고 상담사들의 복지를 확충하는 것이 타당하디.

기자도 며칠 전에 유효기간 만료로 재발급 받은 씨티카드의 자동이체 문제 때문에 수차례 전화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아 이메일 상담을 했다. ‘답변이 늦어 미안하지만 메일상으로 답변을 드릴 수 없으니 전화로 다시 문의하라'는 회신을 3일 후에 받았다. 우롱당하는 기분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기분 나쁜 것은 기자의 인격 수양이 부족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씨티카드는 무슨 자격으로 기자에게 인내심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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