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일 수요관리사업자협회 회장 (에넬엑스코리아 전무이사)
김흥일 수요관리사업자협회 회장 (에넬엑스코리아 전무이사)

2019년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새해가 밝았다.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은 가족, 친척, 어르신들과 함께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녕과 만복을 기원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풍습이다.

일터에서는 직장상사, 이해관계자, 부하직원 등 도움을 주신분들께 고마움을 담은 편지와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예의이고 우리 명절의 미풍양속이라고 여겨졌었다. 하지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이후 이러한 작은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인 공직자 및 공직 유관기관 임직원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2016년 9월 시행이후 김영란법은 음식물·선물·경조사비의 가액 범위가 현실에 맞지 않다고 일부수정되어, 농수축산물과 그 가공품 선물 한도만 10만원으로 상향조정 되었다. 그래서 최근 정육과 과일세트가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한동안 동반자들과 식사후 식비를 신용카드로 나눠 계산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으며, 논란이 뜨거웠던 접대 식사비 3만원을 맞추기 위해 여의도 및 관공서 주변의 식당에는 ‘2만9000원짜리 김영란법 메뉴’가 등장했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메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공정하고 청렴한 사회 실현을 위해 마련된 이 법 시행 후 2년여 동안 우리 사회가 변한 것을 체감한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청렴성 실현에 대한 기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입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68%가 청탁금지법 시행을 ‘잘한 일’ 이라고 발표하였다. 국민들 또한 청렴 인식에 대한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지난 2017년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청탁금지법 시행에 대한 기업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83.9%가 김영란법 시행으로 ‘사회전반에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고 평가한바 있다. 하지만 현재 ‘이해충돌 조항 개정’ 등 본질적인 개선을 위해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정부·공공기간과의 소통을 제한하는 부분을 현실감 있게 표현한 일례도 있다. 몇해전 중앙정부 고위관료로 퇴직한 선배와 저녁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선배 왈,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는 산업과 현장을 이해하는데 있어 소통하기 편했다라고 말한다. 가령, 사무실 외에도 식당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해당사자와 자유롭게 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사무공간에서 30분에서 1시간가량 진행되는 이성적인 말의 양으로는 부족하며, 때로는 이해당사자가 술을 마시고 용기를 실어 몇시간동안 전체의 맥락을 허심탄회하게 토로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었던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 선배는 청탁이 아닌 소통의 관점에서 볼 경우라고 한정했다. 반론의 여지는 많겠으나 현실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행태는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소통방식이 필요하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몰라서 안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정부조직 내부의 의사소통이 우선이며, 내부 의견조율에 쫓기는 현실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현장을 봐야만 현실감각을 갖고 탁상공론의 고정관념에서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기획 수업 (다카하시 마코토) 의 책에서 소개된 구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획을 함에 중요한 것은 사고(思考) 와 사고(四考)다”라고 한다. 사고(思考)는 말 그대로 생각하고 기획을 하는 것이며, 4고(四考)는 발, 귀, 마음, 손을 의미한다고 하며, 결국 이 모두가 사람과 현장을 중요시 하는 행위이다. 발은 직접 발로 뛰어 현장을 보고 관찰하는 것이고, 귀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마음을 열고 대해야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손으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꼼곰히 메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또는 공공기관에서 책상에서의 시간보다는 현장소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문제의 실마리가 보이고, 쉽게 생각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정부와 이해당사자간에 더욱 더 문턱을 낮추어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역발상으로, 공무원이 이해당사자들에게 밥과 술을 사며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김영란법에 위반일까요? 이러한 모습은 접대와 청탁이 아닌 현장중심의 진리를 찾아가는 일말의 행태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사회의 문화와 의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력 수요관리사업자 대표들을 각각 만나보면, 2019년 황금돼지해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다. 정부의 규제, 정책방향 등 의사결정 과정에 해당협회,기업 등 이해당사자들의 다양한 참여확대를 통하여 투명성을 개선하고 실질적인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김흥일 수요관리사업자협회 회장 (에넬엑스코리아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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