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매고 있던 가방을 마루 위로 휙 던져버리고 밖으로 튕겨 나갔다. 집이나 방구석에 틀어박혀서는 즐길 게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방에서는 어른 흉내 내며 민화투를 치거나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것 정도였다. 가을에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따던 기억도 좋았다. 하지만 집에 있으면 괜스레 어만 사고만 치기 일쑤였다. 사고를 치더라도 차라리 집 밖이 나았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둘째 딸만 하더라도 방과 후 학원과 집을 오가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다. 엄마는 오후 내내 일정 관리하며 학원에 딸을 실어 나르며 매니저 역할을 하느라 피곤하다. 이렇게 유년 시절을 해를 볼 틈도 없이 보낸 게 밀레니얼 세대부터다.

경제발전의 속도만큼이나 세대별로 유년 시절을 보낸 공간도 사뭇 달랐다. 세대 간 공간에 대한 경험의 차이는 소통 방식의 차이를 만들었다. 선후배 세대 간 공간 차원의 대비되는 3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자.

첫째, 선배세대는 야외 공간, 후배세대는 실내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선배세대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1950~70년대에는 주택 유형 중 단독주택 비중이 90%가 넘었다. 마당은 사계절 다른 추억을 만들어냈다. 외양간의 느린 황소 소리, 양철 처마를 두들기는 후드득 빗소리,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 양지바른 마당에서 볕을 쬐고 낮잠 자는 누렁이. 많은 선배세대의 어릴 적 추억은 그랬다. 하지만 후배세대는 주로 아파트에서 살았다. 컴퓨터와 침대가 있는 나만의 방에서 홀로 있거나 마당 역할을 대신하는 거실에서 가족 대신 TV와 대화했다. 장작과 연탄 등 연료를 아끼기 위해 한 방에서 다닥다닥 살을 부대끼며 온 가족이 함께 삶을 나누던 선배세대와 비교된다. 후배세대에게 집은 혼자서도 즐길 거리가 넘치는 넓은 공간이었다. 직장에서 워크숍을 할라치면 선후배 세대 간 기호가 갈린다. 선배세대(특히 베이비붐 세대)는 등산, 체육대회처럼 야외활동을, 후배세대는 보드게임이나 방 탈출 게임을 하는 실내 공간을 더 선호한다.

둘째, 선배세대는 오프라인 공간, 후배세대는 온라인 공간에서 주로 활동했다. 선배세대는 콩나물처럼 좁은 교실에서 공부했다. 또래 학생들이 많아 2부제로 9시, 2시로 반을 나눠야 할 정도였다. 방과 후에는 동네 아이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 골목이 시끌시끌했다. 반면 후배세대는 귀가 후 과외나 학원 수업이 아니면 집이나 동네 피시방에서 컴퓨터와 마주했다. 온라인 세상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래서 직장에서 정보를 찾을 때도 선후배 세대 간 차이가 난다. 선배세대가 관련 책부터 찾는다면 후배세대는 키워드를 바꿔가며 인터넷 서핑부터 한다. 여행을 가더라도 선배세대가 주변 지인에게 의견을 구한다면, 후배세대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온라인 덕후에게 최근의 고급 정보를 얻는다. 선배세대는 서열이 명확한 3차원의 오프라인을, 후배세대는 투명하고 수평적인 온라인이라는 2차원의 공간을 닮았다. 스마트기기, 유튜브는 젊은 후배세대를 더 온라인 친화적으로 만들고 있다.

셋째, 선배세대는 경험의 반경이 주로 국내였지만 후배세대는 해외로 넓어졌다. 해외여행 자유화와 인터넷 상용화의 영향이 크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후배세대는 어려서부터 해외 경험이 가능해졌다. 선배세대보다 소통의 범위가 확장되고 국제 감각을 갖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선배세대는 어른이 돼서야 배낭여행을 하거나 지사 파견 등으로 느지막이 해외 경험을 했다. 또 1994년 인터넷 상용 서비스의 시작은 선후배 세대 간 활동 무대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선배세대가 학창시절을 보낸 시기와 비교하면 후배세대는 더 좁아진 지구, 더 넓어진 집에서 살았다. 후배세대는 수시로 휴가를 내 해외여행을 떠난다. 휴가 시즌이 돼야 가족과 휴가를 떠나는 선배세대와 비교된다. 해외파견 근무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선배세대는 해외 근무를 선호한다면, 후배세대는 해외 생활의 어려움을 일찍 체험했기 때문에 해외 근무에 대해 동경이 없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선후배 세대 간 사뭇 다른 공간에 대한 체험은 이해와 공감의 단절을 만들어냈다. 지금 선후배 세대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선후배 세대 간 소통의 틈을 좁히기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교차 경험이 필요하다. 선후배 세대는 서로 즐기는 공간을 바꿔가며 체험해 보는 것이다. 예컨대 그동안 회식이나 워크숍을 할 때 선배세대가 지정한 장소를 갔다면 후배세대가 좋아하는 맛집과 명소로 바꿔보는 것이다. 또 회의를 사무실에서만 했다면 카페나 야외로 장소를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저마다의 목적으로 사무 공간의 혁신을 꾀하는 조직들이 늘고 있다. 세대 간 소통을 돕는 공간도 꼭 염두에 두고 기획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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