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작은 실수로 힘들었던 시절 친구 A가 위로라며 건넨 말이 있다.

“그건 무조건 상사 탓이지. 4개월 된 수습이 뭘 알아. 그 실수 분별하라고 상사가 있고 시스템이 있고 데스킹이 있는 거지.”

A는 이 일을 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남 탓’이라고 했다. 기자 일을 하며 너무 자책감과 괴로움을 가지면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당시 실수가 누구의 책임이고를 떠나서 A의 위로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던 기억이 있다.

ESS 화재와 관련해서도 ‘남 탓’이 횡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 총 21건의 화재가 발생했지만 원인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ESS 유관기업들의 제조사와 시공사, 사업장간의 ‘네 탓’ 공방이 이어지고 있고 그 사이에서 정부 또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제조기업은 영업기밀을 이유로 화재 현장의 데이터로그도 공개하지 않고 당사 제품으로 인한 화재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화재의 책임은 곧 피해보상과 돈으로 이어지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안전과 관련해서 ‘남 탓’은 독이 될 뿐이다. ESS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정도의 사업이라면 '남 탓'으로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겠지만, ESS는 국가 전력산업에 핵심이 되는 시스템으로 에너지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당장의 책임회피는 단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줄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화재 원인의 명확한 규명을 방해해 더 큰 손실을 불러올 수 있다. 일부 기업들의 ‘남 탓’ 공방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업계가 ESS 화재 원인 조사와 관련해 최대한의 협조를 해야만 이 위기를 넘어 ESS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안전에 있어 최선의 방책은 ‘정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