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국과 미국에서 비슷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먼저 영국이다. 여기서는 영국과 유럽연합(EU)의 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문제다. 합의안이 영국 하원에서 부결됐다.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국경문제가 쟁점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합의안에는 2020년까지 새 무역협정을 맺지 못하면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EU 관세동맹에 당분간 속하는 것으로 돼있다. 국경을 막고 이민자, 난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자는 게 EU탈퇴의 목적이다. 관세동맹에 가입해서 국경을 그냥 열어둔 채로 놔둔다면 탈퇴의 의미가 없어진다. 야당은 당연히 반대지만 여당인 보수당에서도 이건 진정한 EU 탈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모두가 반대하는 합의안이 된 것이다

영국 국민들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것은 2016년 6월 23일이다. 당시 경제학자들 중애 영국의 탈퇴를 옹호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EU에서 나오면 영국 국민의 복지를 빼앗고 있는 이민자나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이 탈퇴 결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영국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나라다. 유럽에서는 가장 심각한 편이다. 영국 시민들 중에 이게 유럽연합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또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3월 29일에는 영국은 무조건 유럽연합을 탈퇴해야 한다. 협상 기간이 늦춰질 수 있지만 어찌됐건 현재로는 영국이 첫 EU 탈퇴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어떤 수준으로든 유럽대륙과 영국 사이에는 장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번에는 미국이다. 미국에선 정부의 업무정지, 이른바 셧다운(Shutdown)이 문제였다.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해 연방정부를 임시 폐쇄하고 업무를 정지해야만 했다. 역대 최장 업무정지 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은 다음달 15일까지 3주 동안 정부를 운영할 임시예산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이 예산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57억 달러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은 없다. 대신 논의는 계속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셧다운이 재연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멕시코 국경장벽을 그냥 건설할 수도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벽은 미국에 마약과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막는 벽이라고 부른다. 얼핏 보면 장벽을 세우려는 트럼프와 그걸 막으려는 민주당의 대립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다르다. 민주당도 국경 통제에는 기본적으로 찬성이다. 알고 보면 미국이 밀입국을 막는다며 국경에 처음으로 물리적 구조물을 설치한 것도 지난 1990년대 민주당 클린턴 정부 때였다. 트럼프가 만들겠다는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 펜스였지만 그게 그거다. 오바마 정부 때에도 국경 통제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는 대폭 늘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추방된 것도 오바마 정부 때였다. 민주당과 트럼프의 차이는 펜스냐, 아니면 콘크리트 장벽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지금도 민주당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장벽 설치를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13억 달러로, 그러니까 돈을 좀 덜 들여서 장벽을 만들라는 것뿐이다.

지금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다. 세계는 지금 벽을 쌓고 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된 후 세계적인 규모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없었다.

김상철 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MBC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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