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욱 교수의 월요객석) 탈원전-기해년 광화문 광장에 묻다
작성 : 2019년 01월 16일(수) 09:47
게시 : 2019년 01월 18일(금)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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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기해년 광화문 광장에 새해 햇살이 비춘다. 새해 새로운 희망을 기원하듯 광장에 수많은 목소리가 북적인다. 기해년에는 탈원전을 묻는 목소리도 하나 더했다. 광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광장의 주변에는 시장이 있고, 관공서가 있고, 찻집이 있다.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광장에 모였다. 광장에서 의견을 묻고, 복잡다단한 갈등의 접점을 찾았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중심에는 ‘아고라’로 불리는 광장이 있었고 로마에는 ‘포럼’이라는 광장이 있었다. 아고라와 포럼은 민의를 모으는 곳이었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는 초기 민회를 아고라에서 열었고, 소크라테스도 아고라에서 아테네 사람들과 소통했다. 로마의 포럼 유적지에는 오늘날 연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 된 ‘rostra’라는 벽돌로 쌓은 연설대가 있다. 로마를 세계의 제국으로 만든 시저도 로마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시저의 광장이라는 ‘Foro di Cesare’를 만들었다.

무술년을 마무리 하는 12월30일은 매우 추웠다. 전날 저녁에 ‘탈원전 반대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추진’을 위한 가두 서명운동을 위해 광화문에 천막을 친다는 메시지가 왔다. 누구지? 어떤 사람들이지? 탈원전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행사를 했지만 가두서명까지 가기를 원치 않았고, 주변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모의 이 추위에 누가 천막을 친단 말인가. 잠을 설치고 아침에 눈 뜨자마자 보온병과 커피믹스 몇 개를 들고 광화문 행 버스를 탔다.

광화문에 가는 내내 심경이 복잡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라는 생각부터, 어떤 분들인지 인사만 하고 빨리 돌아오자는 얄팍한 생각까지. 천막을 치고 가두서명을 시작한 분들은 원자력을 공부한 사람들도, 원자력산업에 종사한 분들도 아니었다. 광주에서 공직을 퇴직한 후에 환경단체인 '생명의 사과'를 시작한 신광조, 진안에서 양계업을 하는 최영대, 그리고 언론사에 봉직했던 효석문화재단의 조기양. 이렇게 세분이서 천막을 세웠다. 원자력과의 인연은 물론 이 세분 간의 관계도 공통분모가 없다. 그런데 탈원전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걱정이 되어 나섰다는 말씀에 더 할 말이 없었다. 무술년 12월 30일의 아침은 매웠다. 추위에 난로도 켜지지 않는다. “불을 붙이기로 했으면 끝장을 봐야지” 최영대님의 말씀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 와중에 지나가던 50대 아주머니가 천막을 헤집고 들어와 아무 말 없이 서명을 하고 간다. 최초의 서명이었다.

광장에는 찬바람이 분다.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서명을 부탁한다. 누구는 말없이 해주고, 누구는 피해서 간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찾아와서 서명을 하는 이들도 있다. 원자력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 사람도, 원자력을 살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평생을 원자력에 몸담았던 분은 자긍심이 무너졌다고 탄식과 함께 서명을 했다. 전기품질을 얘기하며 원자력을 해야 한다는 시민도 있다. 재생에너지 좋아도 아직은 원자력 필요하다고 서명한 아주머니도 있다. 풍력, 태양광에서 일했던 분들도 한 말씀 하고 간다. 어느 40대는 제주도에서도 풍력이 어려운데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하며 서명한다. 어느 50대는 태양광 한다고 벌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어느 청년은 애써 만든 산업을 버리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서명한다. 한편 무관심인지, 원자력에 반대인지 에둘러 가는 시민들도 있다. 서명대를 두고 종종걸음이 흩어진다.

광장에는 추위도 흩어진다. 한쪽에서는 멸공을 외치고, 다른 쪽에서는 방남(訪南)을 역설한다. 이쪽 구석에서는 같으면서도 다른 종교 단체들이 집회를 하고, 저쪽 구석에서는 역시 같으면서도 다른 노동집회들이 열린다. 최인훈은 소설 ‘광장’에서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 갈등하는 청년을 그렸다. 광장이 이데올로기를 녹여내는 통합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 처럼 비극적 선택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기해년 광화문 광장에 탈원전을 묻는다. 오갈길 바쁜 시민들이 탈원전 걱정에 한마디를 던진다.
“더불어 사는 세상, 에너지도 더불어 가야지요“

중앙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정동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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