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우리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말모이’는 ‘말의 모음’, 즉 ‘사전’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지키려는 조선어학회와 애국 선열들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이다.

특히 좋은 대사들 덕분에 긴 여운이 남았다. 그 중 하나는 “말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였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우리말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신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 그에 대해 어렴풋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 순희, ‘우리’ 집, ‘우리’ 마을 등 우리말에는 유달리 ‘우리’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영화 속 조선어학회 서점에서 일하는 구자영이 이야기한 것처럼, ‘말모이’는 결국 ‘우리’로 수렴된다. 달리 말하면 ‘공동체 정신’이다.

특히 조선어학회가 비밀리에 전국의 방언을 모아 표준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정신이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궁둥이’라는 단어 하나도 지역에 따라 ‘궁디’, ‘방댕이’ 등 모두 다른 말로 쓰인다. 전국에서 뜻을 함께하기 위해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가 돼 표준어를 정립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이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일제가 30년 이상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독립에 대한 꿈은 희미해지고, 민족의 정신이 변질되어가던 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나’가 아닌 ‘우리’, ‘나’보다 ‘우리’로서 우리말이 가진 바로 그 ‘공동체 정신’을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또 다시 우리 공동체에 시련이 오고 있다. 이전엔 우리나라에 국한된 위기였다면, 이제는 전세계라는 공동체 모두가 함께 겪고있는 위기다.

산업화 이후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기후변화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는 대형 화재, 초특급 태풍, 지진, 홍수, 가뭄 등과 같은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냈다. 이상 기후로 러시아의 밀 생산량이 폭락해 전세계의 식량 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지카 바이러스같은 생화학 무기로 전세계 수많은 신생아들의 뇌가 작아져서 최근 몇몇 나라들은 출산을 금지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약 700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있으며, 약 6경원의 천문학적인 피해가 매해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기후변화와의 전쟁에서 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불가항력적이고, 큰 피해를 일으키는 위기는 없었다.

우리 인류는 위기마다 하나로 뭉쳤다. 그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인다”고 했다.

작년 12월 폴란드 기후변화협약에서 전세계 리더들이 모여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 온도 상승의 목표 설정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그리고 전세계 약 50여개 국가들, 수백개의 도시들, 또 수백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 100% 전환할 것을 약속했고, 몇몇은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또한 기후변화협약의 탈퇴를 선언했던 미국의 새로운 정치 세력은 2035년까지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목표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육성하는 ‘그린뉴딜’ 정책으로 전세계의 노력에 한 걸음 동참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후손들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말과 정신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후손을 위해 가장 좋은 것, 반드시 지켜야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다만 더 기민한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큰 걸음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처음은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용기를 내보자. 우리 함께 한걸음 앞으로 내딛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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