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
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

우리 인생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대학 1학년 교양으로 수강한 종교학 수업에서 들은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은 시간을 살지 않고 의미를 산다.” 살아온 시간 속에서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 가족은 새해 첫날 ‘가족 10대 뉴스’를 발표한다. 12월 31일 저녁이면 가족이 모여 1년을 돌아보며 10대 뉴스 후보를 제안하고 최종 선정하는 작업을 한다. 예전에는 부모님이 선정 작업에 참여했는데, 부모님이 연로해진 후에는 두 딸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1월 1일 부모님을 찾아뵙고 선정 결과를 발표하는 시간은 흥미진진하다. 세월이 갈수록 부모님 건강이 뉴스에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청년이 된 아이들의 인생 분투기가 많아진다.

아끼는 후배와 개인 차원의 10대 뉴스를 선정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2018년은 (사)에너지전환포럼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이후 여러 사람들과 의기투합해 2018년 초 에너지전환포럼을 창립했다. 그 후 1년 동안 우리 사회에 에너지전환의 대의를 알리고 비전을 확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재생에너지 기업과 기업인은 물론, 전통 에너지 기업들이 포럼에 참여한다고 할 때 기뻤다. 여의도 금융권과 국회가 우리 뜻에 동참하고 적극 기여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젊은 변호사들이 만사 제쳐두고 에너지전환 운동에 뛰어드는 현장을 봤다.

이 땅에 지속가능한 에너지 미래를 창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헌신하는 각계각층의 모습을 목도한 1년이었다. 원전학계나 업계와 같은 에너지 기득권의 조직적인 반발과 저항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분들도 언젠가는 에너지전환이 우리의 미래요 먹거리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을 통해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문제를 해소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대안 에너지원을 마련하며, 후손에 대한 비용 전가 행위를 방지하고, 산업 혁신과 일자리 창출 기회를 만드는 일에 세계가 함께 하고 있다. 우리 국민 다수도 태양광과 풍력이 우리나라 에너지산업과 에너지 공급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 포럼에서 회원 투표를 거쳐 2018년 국내외 10대 에너지전환 뉴스를 선정했다. 지난 1년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새해를 설계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기 위함이다. 지면을 통해 그중 몇 가지를 간단한 해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이번 선정 과정에는 시간상 포함되지 못했으나 지난 연말 뉴스를 탄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전환산업육성 특별위원회’의 국회 내 출범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에너지전환을 환경과 안전 차원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 새로운 산업과 부가가치 창출, 일자리 만들기의 관점으로 접근하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것이 이 시대 에너지전환 정책이 갖는 보다 큰 가치다. 지금은 여당 중심으로 특위가 구성됐지만 앞으로 여야를 막론하고 에너지전환을 바라는 뜻있는 정치인이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첫째, 월성1호기 폐쇄와 신규원전 4기 사업 취소. 한국수력원자력(주) 이사회는 10년 수명연장 결정으로 2022년까지 운영허가를 받은 월성원전 1호기를 폐쇄하고,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에 계획했던 신규원전 4기 사업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성 없는 월성 1호기 폐쇄와 추가 건설하지 않아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는 원전건설 취소는 합리적인 결정이다. 2020년대부터 설계수명이 도래하는 노후 원전의 폐쇄 여부는 전력 수요관리 정책의 실효성 제고와 재생에너지발전 확대의 성공적 정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둘째, 삼성전자 2020년까지 주요거점 국가 재생에너지 100% 달성 선언. 삼성전자는 2020년까지 유럽, 미국, 중국 내 모든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국내에서는 사업장 내 주차장과 옥상 등에 태양광과 지열 발전시설을 설치하며, 구매금액 기준 상위 100위 협력사에게 재생에너지 사용현황 공개와 목표수립을 권고하기로 했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RE100을 선언한 세계적 기업이 150개를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의 시장 생존을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규제와 제도 미비 때문에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기를 직접 구매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정부와 국회, 한전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셋째, 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 발표. 5년마다 수립되는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이 11월 초 발표됐다. 2040년까지의 에너지 수요와 공급믹스를 전망하고, 산업과 일자리 계획을 제시했다. 204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 전력시장 개방과 전기요금 현실화 등이 주요 논점으로 등장했다. 보다 전향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전환 계획이 권고안에 포함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현실성 없는 계획도 문제지만, 현실 제약을 문제 삼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2019년 초 정부계획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넷째, 태양광 가짜뉴스 논란. 태양광 발전을 둘러싼 유해 중금속 포함, 세척제 사용, 전자파, 빛 반사 문제 등이 제기됐다. 대부분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우리나라에 설치되는 태양광 시설은 소량의 납을 제외하고는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은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패널 사용 후에는 재활용을 통한 적정 처리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무책임한 가짜뉴스 남발은 당장에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저해할 것이나, 결국은 진원지를 향한 국민 불신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다섯째,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비전 선포. 정부가 새만금 지역을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로 조성해 재생에너지 산업을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2.8GW의 태양광 발전단지와 0.2GW 연료전지발전소가 들어선다. 군산 인근 해역에 1GW에 달하는 해상풍력발전도 포함돼 있다. 석탄과 원전 발전에 익숙한 우리 국민에게 재생에너지는 여전히 낯선 발전원이다. 대규모 계획입지를 통해 명실상부한 재생에너지 단지를 선보이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재생에너지가 훌륭한 전력공급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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