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2018년 12월 10일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에게 제출한 '동북아 계통연계(전력망 연결) 추진을 위한 최적 방안 도출 및 전략 수립 프로젝트' 보고서가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동안 수면아래에서만 논의되던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이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논쟁의 시작은 일부 주요 언론매체가 同보고서의 핵심내용을 일부 오해해 보도한 방식에 기인한다. 당시 해당 언론들은 ‘한국전력이 탈(脫)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바 있다. 同보고서는 한전의 공식 보고서가 아니라 한전이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16억원을 주고 경제성 등을 분석 의뢰한 연구 용역이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국민들 상당수가 몇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전력망 구축이나 전기사용 방식 등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해외에 의존하면 안된다는 에너지 국가 주권 의식이 강해서 중국과 러시아에서 가스는 수입할 수는 있지만 전기는 수입할 수 없다는 인식이 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탈원전 논쟁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더더욱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대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까 염려스럽다. 이러한 염려와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서 '동북아 전력망 연결' 사업이 무엇인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전력망 연결'은 흔히 동북아 슈퍼그리드(SUPERGRID)라고 불리는 것으로 동북아 역내 국가 간에 전력계통을 연결하여 전기에너지를 상호 융통하는 것을 통칭한다. 광물, 가스, 석유, 통신, 철도, 도로 인프라와 함께 동북아 전력망연계는 동북아 에너지통합연계망 구축을 형성한다. 구한말, 열강들이 조선의 철도건설권을 선점하기 위해 벌였던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었다. 그 후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한반도의 평화무드 조성과 함께 중국·러시아·프랑스 등 열강들의 한반도를 둘러싼 철도전쟁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철도 다음으로 동북아와 한반도 운명을 가를 최대의 인프라 프로젝트는 전력망 연결 사업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러시아·몽골 등 5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동북아 지역의 전력계통 연계 논의는 30년 이상의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것으로 기본적으로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러시아(동부 시베리아 및 극동 러시아) 및 몽골의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여 전력을 생산하고, 이를 역내 전력 대수요처 국가(한국, 중국, 일본)에 공급하여 활용하는 구상으로 지역 차원의 전력의 효율적인 분배에 관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소련 붕괴 이후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전력수요 감소로 인한 잉여전력 문제 때문에 동북아 전력망 연계를 검토하기 시작하였으며, 초창기에는 러시아-일본 간 전력융통이 주 관심사였다. 2000년대 초반 이후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과 맞물려 ‘한국-북한-러시아’ 전력연계망이 주목받기 시작한 이래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슈퍼그리드라는 명칭으로 다양한 동북아 전력연계망 구상이 도출되어, 아시아 슈퍼그리드는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제안한 것으로 지역적 범위를 동북아 지역을 포함하여 동남아 및 인도에까지 확대하는 구상이었다.

2015년 이전까지는 다양한 역내 양자와 다자협력 틀 등이 제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 전력망 연계는 추진이 부진하였다. 기존 동북아 전력망 연계는 주로 러시아-중국-몽골 3국간에 5TWh 규모의 소규모 전력거래에 그치고 일본과 한국, 북한은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러시아 극동지역에는 풍부한 수력자원을 활용한 전력자원 개발 잠재력이 상당함에도 전력수요처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6년 이후 동북아 전력망 연결사업 추진은 그동안의 휴지기를 마치고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전력망 연결에 관한 그랜드 플랜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중국은 초기 소극적이던 자세에서 일대일로 차원에서 전력망 연계를 위해 ‘글로벌 전력망 연결' (Global Energy Interconnection)를 제안하면서 슈퍼그리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해 2015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전력망 연결' 비전 제시하고 2050년까지 50조달러를 투입하여 북극의 바람과 적도의 태양자원까지 통합적으로 연계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2016년 11월 푸틴 대통령은 3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중국, 북한, 한국, 그리고 일본 시장까지 염두에 둔 ‘아시아 에너지 슈퍼 링(Азиатское энергетическое супер-кольцо : AER)’이라는 러시아 판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제시하였다.

2018년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기적 변화는 동북아 전력망 연결사업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의 노선에 북한이 포함됨으로써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훨씬 더 포괄적이고 현실적인 사업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이후 북한이 본격적으로 경제개방을 추진할 경우 당장 필요한 전기를 구할 데가 없는 상황이다. 북한은 이미 2014년 6월 중국과 고속철도 건설에 합의하였으며, 2018년 6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신의주-개성’ 간 고속철을 이미 제안하였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를 추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남북철도연결에 러시아 전기를 연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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