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중도원, 대한민국 에너지정책 ‘현주소’

임중도원(任重道遠). 올해 대학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2년 차인 문재인 정부의 현실을 직시한 말이지만, 전기와 에너지업계에도 해당된다.

탈원전에 따른 에너지원 전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안전 대책과 인프라 확충 등 에너지 전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짐이 무겁고, 중하다. 갈 길도 멀다. 올해 회자됐던 에너지와 전기 뉴스 10개를 선정했다.

1. 文 정부, 본격적인 수소경제 진입 천명

지난 8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혁신성장 관계 장관회의에서 국가 3대 전략산업 중 하나로 ‘빅데이터·공유경제’, ‘인공지능(AI)’, 그리고 ‘수소경제’를 선택했다.

수소경제 진입을 준비하자는 일부 목소리는 있었지만, 정부가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라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갑작스럽지만 정부는 일단 본격적인 수소경제 진입 준비를 천명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수소경제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됐다.

지난 10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 국빈 방문 중 현지 수소충전소를 찾아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를 시승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이미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판교 나들목까지 7km를 시승한 바 있다. 지난 1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와 7일 코엑스에서 있었던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도 수소차 육성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18일 내년도 산업부 업무보고에서도 마무리 발언에 수소차 생산량 확대를 강조하는 등 연신 ‘수소경제’를 빼놓지 않고 있다. 이에 발맞춰 11일 현대차도 충북 충주에서 연 수소연료전지 신축공장 기공식에서 수소산업 전반을 선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2. 공석으로 새해 맞은 공공기관…줄줄이 새 주인 맞아

2018년은 한국전력과 발전 5개사 분사 이후 최초로 모두 사장이 없는 상태로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1월 한국수력원자력 이관섭 당시 사장이 사임하면서 전력당국의 지휘부 공백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2월 박일준 동서발전 사장, 박형구 중부발전 사장, 유향열 남동발전 사장을 시작으로 3월 신정식 남부발전 사장, 김병숙 서부발전 사장이 새로 취임했다. 이어서 4월에는 한수원과 한전도 정재훈 사장과 김종갑 사장을 맞이하며 문재인 정부의 주요 에너지 공기업 인선이 완료됐다.

문재인 정부 인사는 연말까지 이어져 김창섭 에너지공단 이사장, 엄재식 원안위원장 등에 대한 인사도 단행됐다.

기관장들은 취임사를 통해 ‘에너지 전환’과 ‘사회적 책임’에 방점을 뒀으며, 역점 사업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잘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들이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가하고 야당이 에너지 전환 정책에 반발하면서 전력구조 개편 등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올해 내내 화두에 오르내렸다.

3.잇달아 터진 안전사고…‘안전한 대한민국’ 무색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제천과 밀양에서 화재가 일어나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뒤 정부는 ‘국가안전대진단’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채 해를 넘기지 못했다.

지난 4일 백석역 온수관 파열로 1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목동과 안산에서 온수관이 터지자 시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됐다. 이어 지난 8일 강릉발 KTX 열차가 탈선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오송역에서 단전사고가 있은 지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잇따르는 사고에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결국 지난 11일 사퇴했다.

11일에는 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채 발견됐고, 18일에는 강릉 펜션에서 무자격자가 설치한 보일러에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되며 3명이 숨지는 등 12월에만 다수의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안전불감증’이 대한민국 안전사고의 고질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국가안전대진단의 약발이 해를 넘기지 못하면서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 정부가 내년에 특별 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됐다.

4.탈원전 정책에 사회적 갈등 고조

현 정부가 지난해 탈원전 및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를 발표하면서 원자력계는 역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원전 산업계는 원전 건설이 중단되거나 건설 계획이 무산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거나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

반면 환경단체, 시민단체 등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힘입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전 산업은 세계적으로 이미 사양산업이 되고 있고 재생에너지 분야로 에너지 산업이 전환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경주·포항 지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들며 원전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갈등에는 비단 의견 대립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념까지 개입돼 더 치열한 정치 싸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5.전기공사 시장 안정적 성장 지속

전기공사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국가 경제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하는 모양새다.

한국전기공사협회(회장 류재선)가 공시한 ‘2018년도 전기공사 시공능력평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전기공사업 실적액은 27조6000억원 수준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인 23조9000억원과 비교해 15% 정도 증가했다.

지난 2013년 20조2000억원 정도였던 전기공사 실적은 2014년 21조6000억원, 2015년 23조6000억원, 2016년 23조9000억원 수준으로 지속 상승했다. 여기에 지난해 27조6000억원을 기록하며 전기공사업계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전기공사협회는 2017년 전기공사 분야에서 호성적을 기록한 것은 건설주택시장의 수익형 부동산 등 시장수요가 확대되고, 신도시‧역세권 등 복합단지 투자사업으로 인한 건설투자가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민간주택 분양시장의 호황이 전기공사업계의 먹거리를 확보하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졌다는 것.

2018년 역시 지역경기가 점차 회복되고 있는 시장 분위기와 더불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대규모 도시재생사업 등을 호재로 삼아 전기공사 실적은 지속 상승할 것으로 기대된다.

6.탈원전 여파로 한전 적자

올해 전력시장의 눈은 한전의 실적에 쏠렸다. 한전의 영업실적이 정치권은 물론 산업계 전체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었다.

한전은 지난해 3분기 연결기준 1조395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영업적자에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한전의 영업실적에 관심이 높았던 것은 산업계는 한전의 곳간이 넉넉해야 관련 산업에 대한 투자가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에서였던 반면, 탈원전 반대 목소리를 내는 쪽은 탈원전의 후유증으로 인해 한전의 영업실적을 지적하고 싶었다.

한전의 영업이익에 영향을 주는 것은 연료비, 정책비용, 원전의 가동률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해석도 달랐다. 한전을 비롯한 전력공기업은 올해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강력한 자구 노력을 벌였으며, 이런 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7.3차 에기본 권고안 발표…실현가능성・모호성 질타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워킹그룹이 20년 동안 에너지 정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지만, 정책의 실현가능성, 모호성 때문에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워킹그룹은 총괄, 수요, 공급, 갈등관리‧소통, 산업‧일자리 등 총 5개 분과를 꾸려 지난 3월 발족 이후 약 7개월간 논의 과정을 거쳐 11월 7일 권고안을 확정했다. 초미의 관심 속에 권고안을 기다렸지만, 2040년까지의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적게는 25%에서 최대 40%로 잡는 등 명확하지 않은 정책 목표와 수요증가에 대한 낙관적인 예측이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정부는 권고안을 바탕으로 내년 1월 중 정부안을 확정한 뒤 녹색위 보고를 거쳐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정부안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초안이나 다름없는 권고안의 내용이 정부안에서 얼마나 수정·반영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8. 소규모 전력중개시장 본격 개설

정부는 지난 13일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을 본격 개설했다. 소규모 전력중개시장은 태양광 등 소규모 전력자원을 중개사업자가 모집하고 거래, 관리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한다. 그간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 두 기업만이 전력 거래의 주체가 됐던 것에 비하면 민간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 틈이 생겼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제·개정된 관련 시장운영규칙에 따르면 소규모 전력자원 보유자는 간단한 등록을 통해 전력 시장 진입 절차를 중개사업자에게 맡길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소규모 신재생 발전설비 소유자가 전력거래뿐 아니라 암암리에 해야 했던 유지·보수 서비스를 중개사업자에게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낼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중개거래자가 소규모 신재생 전력자원을 모집하기 위한 수익창출 방안이나 전력생산량 예측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는 따로 마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 관계자는 “예측 정확도에 따른 계통 편익을 현재로서는 계산하기가 어려워 제도를 구체화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9.조명업계에 불어닥친 전자파 적합성 평가 논란

2018년도 조명업계의 최대 이슈는 전자파 적합성 평가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파 적합성 평가 논란은 익명의 민원인이 제기한 의견에서부터 시작됐다.

민원은 전파연구원에 공개된 전자파 적합성 평가 현황을 근거로 나라장터 쇼핑몰에 등록된 약 1만5000개의 제품 중 1만2000개의 제품이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고 판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파연구원은 LED조명의 경우 원칙적으로 모든 제품은 전자파 적합성 시험을 받고 필증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조달청은 이 의견을 바탕으로 거래정지라는 강수를 뒀다. 또 업체들을 대상으로 적합성 평가 취득 자료를 요구하는 등 내부적 절차에 의거해 후속 조치를 시행했다.

감사원은 두 기관에 대한 감사를 통해 전자파 적합성 평가를 받지 않은 2794억원 규모의 LED조명이 공공기관에 납품됐다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전파연구원은 후속조치로 내년 상반기까지 위법을 저지른 업체를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밝히면서 여전히 논란은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10. ESS 시장에 드리운 명과 암

2018년은 ESS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해였다. 지난해 대비 20배 이상 시장이 커졌지만 성장하는 속도만큼이나 화재가 많이 발생해 안전에 대한 우려가 증폭됐다. ESS 화재는 올해에만 16회 발생했다. 용도별로 보면 태양광발전 연계 ESS에서 10회로 가장 많이 발생했고, 풍력발전연계가 2회, 주파수조정용이 2회, 피크저감용에서 2회 발생했다.

정부 당국이 원인을 찾고 사고예방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양새지만 원인은 한 가지로 지목되지 않는다. ESS 컨테이너 안 습도·온도 조절 실패, 지나치게 가까운 랙 간 이격거리, 외부 충격으로 인한 셀 내부 단락, 안전기준의 부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ESS 안전을 보강하기 위해 ESS 전기설비기술 기준령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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