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급기야 국가대표급 원자력 주기기 생산회사인 두산중공업을 사지로 내몰았다. 경영 악화의 책임을 진다며 취임 9개월 밖에 안 된 사장이 사표를 냈다.

사표를 내기 전 그는 7200여명의 임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후배들에게 좋은 회사를 물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탈원전 이전과 비교해 거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급락했다. 두산중공업의 지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 86% 급감했다. 임원을 30명이나 줄이고 직원 수백 명을 계열사로 내보낸 데 이어 과장급 이상 전원을 대상으로 유급 휴직을 시행키로 하는 등 허리 띠를 바짝 졸라맸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 아니 찾을 수가 없다. 기술력과 인지도 등 두산중공업의 원자력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전 종주국인 미국에 원자로를 수출할 정도다. 우리나라 최초 수출 원전인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에도 두산중공업이 만든 주기기(원자로 터빈 증기발생기)가 장착돼 있다. 물론 두산중공업 매출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남짓으로, 작금의 위기가 오로지 원자력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발전설비 그것도 원자력 주기기 생산사로서의 두산중공업의 위상이 탈원전으로 인해 실추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생존을 위해 엔진(두산엔진)과 건설장비(두산밥캣) 두 자회사 지분까지 팔았지만, 앞날걱정은 여전하다.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에 원전을 발주할 국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전이 지난 8월 22조원 규모의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잃은 것도 탈원전과 무관치 않고, 13조원 규모의 원전사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산업에너지부 장관이 “미국 기술의 도움으로 원전을 건설하기를 원한다”고 언급한 것도 탈원전 여파라는 게 원자력계의 지적이다.

국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2021년 완공 예정인 울산 신고리 5‧6호기를 마지막으로 일감이 끊긴다. 정부의 신규 원전 4기 건설 중단 결정에 따라 2015년부터 원자로 등 주기기를 제작해온 울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사업도 중단상태다. 이 사업이 취소되면 비용의 일부는 보전 받겠지만 사업은 사라진다.

불과 몇 년 전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6000억을 냈던 알짜기업인 두산중공업이 지금은 차입금은 물론 이자비용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닌 정책 때문에 말이다.

두산중공업의 위기는 한국 원자력산업 위기와 맞닿아 있다. 2,3차 협력기업을 합하면 두산중공업 협력사는 1000개에 육박한다. 이들 협력사들이 두산중공업 하나에 목을 매고 있진 않지만, 발전설비까지 확대한다면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원자력은 설계부터 준공까지 짧게 잡아 10년이 걸리는 롱텀 비즈니스다. 우리나라가 앞선 기술력으로 원전 선진국 대접을 받아온 것은 고리 1호기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원전을 지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원전에 따라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게 되면, 단순히 원전사업이 중단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생태계가 무너져 가동하고 있는 원전의 유지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까지 위협받게 될 우려가 크다.

어찌됐든 현재 가동하고 있는 원전도 2040년까지 돌려야 한다. 원자력계가 탈원전 정책을 국민에게 묻자고 외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기득권만 지키자는 게 아니다. 탈원전, 정말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인지 국민에게 묻자. 그런 후 결정해도 절대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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