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안전 사령관격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돌연 사퇴했다. 그것도 국정감사 중에, 종합국감 출석을 앞두고 사직서를 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청와대는 한 시간도 안 돼 사표를 수리했고, 강 위원장은 바로 짐을 쌌다.

사실 강 위원장은 하마평이 나돌 때부터 적임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학에서 원자력을 전공(서울대 원자핵공학과)한 원자력 전문가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대학원(미국 존스홉킨스)을 거쳐 원자력연구원 연구원과 대학(카이스트)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누라 뭐래도 원자력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원자력계에 소문난 반핵인사다. 신고리원전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 재개를 반대 측 전문가로 참여한 것은 가장 최근이고, 이전에도 반원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었다. 물론 강 위원장의 사퇴는 위조된 과제수행 실적서를 제출하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위증을 하는 등 공직자로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게 원인이다.

반핵인사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고 원자력 안전에 문제가 많다는 얘긴 물론 아니다. 안전 문제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다. 그만큼 더 꼼꼼하고 세밀하게 점검하고 검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자력 산업의 위축이다. 사퇴한 강 위원장은 그렇다 쳐도 여전히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탈핵운동을 주도한 환경단체 간부가 2명이나 이사로 있고, 나머지 2명도 화학공학을 전공했거나 사회복지를 전공한 공무원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잖아도 에너지전환으로 포장한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터에 대놓고 반핵활동을 해 온 인사들이 핵심 직위를 맡고 있다면 더 이상 말은 사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친원전 인사들로 채우라는 건 아니다. 이건 반원전 인사 때와는 정반대의 문제를 야기할 개연성이 있다. 아무리 안전을 원자력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더라도 검사와 검증이 규제 보다는 성장 쪽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도 다를 바 없겠지만, 원자력은 특히 균형감과 합리적 사고를 가진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인사는 안 된다. 40여년 원자력 사업을 해 온 원전대국에 그런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시쳇말로 캠코더 인사만 포기하면 된다. 이 원칙 아닌 원칙만 포기하면 쓸 사람은 많다.

원자력은 정치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원자력이 정치에서 놓아져야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원전을 외쳤던 일본이 다시 친원전 쪽으로 방향을 튼 건 다 이유가 있다. 일본의 노선 선회를 좌시해서는 안 된다. 지열자원이나마 풍부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활용할 자원이 빈곤하기 그지없다. 있는 건 발전연료로 쓸 수 없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 뿐이다.

재생에너지도 좋고, 풍력도 좋다. 에너지전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원자력을 전원의 하나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원자력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수출산업이고, 수출품의 하나다. 전원으로서 원자력이 쇠하면, 연관 산업은 덩달아 쇠락한다.

“탈원전 정책의 폐해는 당장이 5년 후 10년 후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라는 에너지업계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못 들은 체 치부해선 미래가 없다. 원자력의 미래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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