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
홍종호 서울대학교 교수

내가 에너지전환 운동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시민공론화 과정 참여가 계기가 됐다. 81세 어르신과 20세 청년이 포함된 500명의 시민평가단 앞에서 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지,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왜 에너지전환이 필요한지 내 생각을 전했다. 결과는 건설 재개를 원하는 시민이 중단보다 많았고, 현재 두 기의 원자로는 건설 중에 있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연구자로서, 나아가 한 사람의 시민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에너지전환과 같이 현재 세대는 물론, 우리 후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적 사안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자인 국민과 깊이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시민 눈높이에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을 이해하는 가운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95%를 수입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값싼 에너지를 풍족하게 쓰자”는 모토가 수십 년 간 에너지정책의 근간을 이뤄왔다. 효율적이지 않고, 공평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에너지 정책이 지속돼 왔다. 여기에 익숙해진 우리 국민이 원전과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며,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쓰자는 에너지전환의 기본원칙을 한 순간에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전쟁과 정치 변혁의 시대를 살면서 고도성장의 꿈을 실현한 기성세대에게 에너지 사용에 따른 사회비용을 감안하여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을 바꾸자는 말이 금방 다가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기후변화의 위협이 목전에 와 있는 상황에서, 미세먼지로 인한 건강피해가 만연한 상황에서, 원전이 야기하는 사고위험과 핵폐기물 처리비용 및 입지선정 문제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에서, 경유차가 우리나라 전체 차량의 45%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에너지전환은 더 이상 이상주의자의 꿈이 아니다. 이것은 미룰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나라가 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사명이다. 이 대의에 세대와 지역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에너지전환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미래세대에게 건강하고 안전하고 깨끗한 국토를 물려주는 일이다.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옳은 방향이기에 멈출 수 없다. 에너지전환은 전 세계가 동참하는 거대한 흐름이기에 우리가 뒤쳐질 수 없다.

올해 초 나는 독일의 태양광 폐모듈 재활용산업을 돌아볼 목적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미 독일은 수명이 다하거나 보다 효율성 높은 태양광 패널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양산되는 폐모듈에 대한 재활용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폐모듈을 수거, 운반, 보관, 재활용 혹은 재이용하는 전 과정을 태양광 패널 생산자, 중앙정부, 지자체, 중간조직, 재활용업체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업체들이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있었다.

에너지전환은 환경보전을 넘어 매우 효과적인 산업정책이자 일자리정책, 성장정책이다. 독일 정부는 탈탄소 에너지전환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신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꼽고 있다. 정부는 조속히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산업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세계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며, 국제경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살아남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내수 시장 확대, 기술협력, 금융지원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성공적인 에너지전환을 위해 우선해야 할 정책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재생에너지에 대한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우리에게 태양광이나 풍력이 아직 익숙한 발전원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화력과 원전 중심의 집중형 발전시설에 익숙해 왔다면 분산형 발전이 훌륭한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산지와 농지가 많고 땅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나라이기에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산자부, 환경부, 농림부, 해수부가 부처별 칸막이를 철폐하고 정책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 주민과 지자체에게 실질적인 이익과 보상이 돌아간다는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사업을 전개해야 한다. 세계적인 성공사례인 덴마크 풍력발전단지 설치과정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 항목은 ‘커피값’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주민들과 충분히 대화하면서 주민 중심 재생에너지 정책을 썼다는 의미다. 대규모 태양광 단지와 해상풍력 단지를 조기에 완성하여 국민 앞에 자신 있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에너지가격에 원가와 사회비용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전기요금 결정방식이 일방적이고 경직적이어서는 재생에너지와 가스 발전 확대가 요원하다. 석탄화력과 원자력발전이 야기하는 심각한 사회비용을 가격에 정당하게 포함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는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많은 나라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가장 싼 발전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도 2025년이면 그리드 패러티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중형 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수송용 연료 가격체계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 휘발유와 경유 상대가격 비율을 100:85로 고정시킨 정책왜곡으로 인해 지난 10년 간 도시 미세먼지의 주범인 경유차가 급속히 보급됐다. 그런데 최근 정부에서는 도리어 유류세를 인하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정책이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정부가 에너지전환의 기치를 내걸었다면 이에 맞는 정책수단을 개발하여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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