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연둣빛 대추를 입에 넣고 요리저리 굴리며 깨물면 신기하게도 사과 맛이 났다. 빨갛게 익어 햇빛에 쪼글쪼글 변해버린 일반적인 대추와 같은 품종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두툼한 소고기 산적은 그 맛이 참으로 고급스러웠다. 간장과 설탕이 적절히 조화된 아주 익숙한 맛은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하얀 쌀밥과도 찰떡궁합이라 다른 반찬은 그저 들러리처럼 느껴졌다. 한 마리 통째로 상위에 오른 찜닭. 그 위에 장식된 빨갛고 노란 고명이 젓가락질하기 아까울 정도로 고왔다.

또 작고 둥근 기름방울이 둥둥 떠 있던 소고기 뭇국은 어찌나 달던지. 지금이라면 손도 안댈 듯한 달짝지근한 무지개 사탕은 그저 꿈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은 필자가 기억하는 추석의 맛이다.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떻게 소리도 없이 이 모든 음식을 만들어낸 걸까. 이제야 드는 의문이다. 소리를 안 낸 것이 아니고 못들은 거구나 이제야 그 속사정을 이해한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맛도 있다. 아버지는 차례가 끝나고 나면 상에 올라갔던 젯밥을 한 덩어리 풀어놓은 냉수를 마시도록 하셨다. 무서움을 없애준다는 게 이유였다. 한 세상 씩씩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가 아마도 어린 시절 한 해에 두세 번씩 마신 그 냉수덕분이 아닐까 싶다.

가정을 꾸리고 나니 추석은 더 이상 녹녹한 명절이 아니다.

할머니, 어머니와 달리 앓는 소리를 내며 음식을 만든다.

추석 차례 상에 빼놓을 수 없는 전은 중노동에 가깝다. 널찍한 소쿠리에 동태전, 육전, 꼬치전, 고구마전, 배추전, 호박전, 두부전 등이 빼곡히 쌓일 때쯤이면 “아이쿠” 소리가 절로난다. 마트에 널려있는 동그랑땡을 왜 직접 만드는지 이해가 안 간다. 간 돼지고기에 두부와 야채를 섞어 동글게 빚어내고 남은 것들은 깻잎전, 고추전, 표고버섯전으로 재탄생된다.

이쯤에서 문제. 전(煎)의 우리말은 뭘까. 정답은 ‘저냐’다. 깻잎저냐, 고추저냐, 꼬치저냐인 셈이다. 동그랑땡은 ‘돈저냐’가 맞다. 저냐 모양이 엽전처럼 생겼다는 의미다. 어쩌다 동그랑땡으로 불리게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설 명절을 지내면서 다음에는 음식 가짓수를 줄여야지, 꼭 그렇게 해야지 다짐을 했다. 그런데 또 음식욕심이 스멀스멀 자라난다. 이제는 그리 젊지도 않은데 왜 사서고생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명절음식을 주문하거나 동네 반찬가게에서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추석연휴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을 하는 이들도 많다는데 말이다.

‘그래도 조상님께 올리는 건데 좀 힘들어도 직접 만들어야지.’

‘정성껏 준비하면 그 복이 다 자식들에게 간다.’

그 옛날 나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시던 말을 내가 읊조리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추석에도 나의 팔과 허리는 힘들겠구나. 어쩔 수가 없겠구나.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