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주)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허두영 (주)데이비드스톤 대표이사

“이렇게 빨리 나이 드는지 몰랐다.” 세월의 속도를 체감한 기성세대일수록 공통으로 하는 얘기다. 필자도 어느덧 이 말이 공감되는 나이가 되었다. 누구도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를 수는 없다. 지금 젊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해야 하고 또 젊은이다워야 한다. 기성세대의 단점을 흉보면서 정작 자신도 악습을 닮아가는 ‘젊은 꼰대’가 돼서는 안 된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얘기한 ‘어떤 사람’이 되지는 말자. “어떤 사람은 25살에 죽는데 장례식만 75살에 치른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젊은 후배들에게 은따(은근히 따돌림)되지 않으려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어딜 가든 또라이는 있다.”는 의미다. ‘꼰대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을 만하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꼰대는 있다는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꼰대는 과연 누구인가? 한 마디로 다음 세 가지에 ‘갇힌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나, 꼰대는 ‘과거’에 갇힌 사람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생각은 3차 산업혁명 시대 심지어 그 이전 시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고 경직된 사람이다. 둘, 꼰대는 ‘나’에 갇힌 사람이다.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고, 환경이나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알거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구별하는 메타 인지가 부족하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셋, 꼰대는 ‘권위’에 갇힌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 즉, 권위에 취해 후배를 존중하지 않는다. 정작 자신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이렇듯 과거, 나, 권위에 갇힌 꼰대는 쓰는 언어도 다르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거야.” 꼰대는 유통기한이 지난 과거의 기준이나 성공 방식에 갇혀있다. 그래서 그들과는 말이 잘 안 통한다. 마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와 같다고나 할까. “나 정도면 합리적인 선배지.” “나는 꼰대는 아니야.” 꼰대는 자신에 갇혀 타인의 생각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진다. 고집이 세며 잘못에 관대하지 못하다. 안타까운 점은 꼰대는 스스로 꼰대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젊을 때 그런 고생도 해봐야지.” “내가 ~했을 때는 말이야.” 꼰대는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을 못 하는지 안 하는지 후배들과 눈높이 대화가 안 된다.

누구나 방심하면 언제든 꼰대가 될 수 있다. 그럼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꼰대 탈출을 원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를 실천해보자.

첫째, “그래 세상이 변했어. 나도 바뀌어야 해.” 스스로 시대에 뒤처지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지 되짚어본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맞는 열린 마인드를 갖기 위해 꾸준히 학습해야 한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사고도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기꺼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나도 틀릴 수 있어.” 성찰적 사고를 해야 한다. 내 생각이 명명백백 맞더라도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이 안 되는 후배 직원의 얘기에도 인내하며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타인의 사적인 영역까지 주제넘게 참견하지 않아야 한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나는 노력도 필요하다.

셋째, “나도 너만 할 땐 그랬지.” 지위와 권위를 내려놓고 상대의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당돌하거나 버릇없어 보이는 후배 직원의 모습에도 관대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 직급이 아니라 과거 자신이 후배 직원의 직급이었을 때와 비교하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쉽지 않지만, 지위나 권위로 대우나 의전을 받는 것도 과감히 고사할 줄도 알아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열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과거, 나, 권위에 갇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현재를 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환경과 타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권위라는 감투를 과감히 벗어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윗사람에게 정보가 집중되고 어느 정도의 관례나 정해진 답이 있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단정적이고 교조주의적으로 내 생각(Text)을 강요해도 소용이 없다. 지금과 같은 전대미문의 불확실성 시대에는 구성원과 맥락(Context)을 공감하고 의기투합해 함께 답을 찾아가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저작권자 © 전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