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선택의 시기는 지났다…무조건 가야할 길”

박성준 동국대학교 블록체인 연구센터장은 자타공인 국내 블록체인 분야 전문가다. 최근 각종 기업·기관·학교 등 다양한 곳에서 ‘블록체인 제대로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의 블록체인 패러다임 전환의 속도가 너무 늦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입으로는 ‘블록체인’을 준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박 센터장은 에너지를 비롯해 금융, 경제, 의료, 물류, 교육 등 블록체인 패러다임이 만들어 갈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과 체질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경제 생태계를 파괴적으로 혁신할 블록체인 분야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골든타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블록체인은 무엇입니까.(간단한 정의) 우리는 왜 블록체인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할까요.

“저는 블록체인을 ‘새 컴퓨터’에 비유합니다. 여기에 ‘글로벌’과 ‘신뢰’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데요. 컴퓨터가 등장한 이후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이전에 사람이 하던 일을 컴퓨터로 처리하면서 효율성과 경제성 등 가치가 크게 확장됐잖아요. 블록체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컴퓨터의 등장은 이전에 경험했던 모든 가치와 질서들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과거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 만든 힘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곱씹어볼까요. 당시 정부·민간에서는 ‘사이버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오늘날의 대한민국 인터넷을 견인했어요.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블록체인은 이제 ‘한다, 안한다’의 선택을 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우리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블록체인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간과한다거나 할지말지를 고민하는 시기는 지났어요. 이제는 무조건 해야만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블록체인 패러다임과 이전의 구조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차이,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블록체인이 바꿔갈 미래의 모습을 한마디로 정리하신다면.

“블록체인 패러다임은 서버 중심의 중앙집중형 생태계를 P2P형태의 분산형 구조로 바꾸게 될 것입니다. 이는 생산자와 소비자, 갑과 을로 나뉘는 현재의 시스템 속 각 주체들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생산자’에요. 이는 생산자에 ‘부의 편중’을 불러오는데요. 서버가 없어지는 블록체인은 ‘그들의 경제를 우리들의 경제로’ 바꾸는 기반이 됩니다. 부의 불균형을 깨고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해요.

블록체인이 가져올 중요한 변화는 시장 참여자들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완전히 새로운 플레이어가 시장에 등장하는 게 아니라 생산자가 소비자로, 소비자가 생산자의 영역에 진입하는 식의 변화가 이뤄지게 됩니다. 이처럼 역할이 바뀐다는 것은 곧 과거의 수익모델이 달라짐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블록체인을 단순한 분산원장과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에요. 분산원장은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 모델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거든요.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블록체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에너지 산업도 블록체인 경제를 중심으로 변화를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논의의 속도는 다소 더딘 것처럼 느껴지는 데요. 블록체인 패러다임에서 에너지 산업은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블록체인은 에너지 산업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바꿀 기술입니다. 정치와 경제, 금융, 물류, 교육 등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것으로 봅니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한전·발전사 등 생산자 중심의 시장을 프로슈머 중심으로 개편하게 될 것이고요. 블록체인에 관한 논의가 더딘 이유를 꼽자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우선 우리나라 산업 및 시장 구조 자체에 약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나라는 시장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매우 큰 편인데요. 중앙집중형 체계가 워낙 공고하다보니 P2P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떨어집니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부족하고요. 에너지 시장에서도 정부의 역할이 달라져야 제대로 된 블록체인 시장이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과 에너지 산업의 결합은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 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어떤 영역들이 앞으로의 시장에 등장하게 될까요. 특히 주목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산업은 정부, 한전 등이 독점하는 체계죠. 블록체인은 이런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시장의 구조를 깨트릴 열쇠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광발전 분야를 보면 다양한 주체들이 생산의 영역에 진입하고 있는데요. 한전이나 전력거래소 등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거래 시장이 만들어 질 것으로 봅니다. 별도의 중개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도 가능하고요.

이런 측면에서 이제 우리나라의 에너지 시장도 정부가 공공성 등을 이유로 묶어두기 보다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있도록 열어줘야 합니다. 결국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프로슈머가 에너지 시장의 핵심이 되겠죠. 이들 프로슈머가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현재의 시장 구조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시장 왜곡 등에 대한 부분도 좀 더 열린 시각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어땠나요? 8비트 컴퓨터를 본 사람들은 ‘이런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소모적인 논쟁만 했어요.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컴퓨터로 거의 모든 것을 하는 시대가 됐잖아요. 현재의 블록체인도 만능키가 아닙니다. 멈춰있지 않고, 계속해서 진화·성장하는 ‘생태계 자체’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앞으로 생길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필요합니다만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는 건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토론의 초점이 ‘블록체인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전과 블록체인 기반의 에너지산업 연구를 추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업이며, 어느 부분에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전력산업의 중심인 한전은 기존의 유틸리티 사업자에서 블록체인 인프라 공급자로 역할이 달라질 겁니다. P2P 거래가 중심인 블록체인 경제에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신용카드나 현금 등의 지불수단이 유효할까요? 새로운 산업 생태계에 맞는 지불방법도 필요하죠.

한전이 새로운 에너지 인프라에서 사용할 암호화폐를 만드는 등의 인프라 사업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더구나 한전은 방대한 양의 에너지 데이터를 갖고 있잖아요. 한전이 가진 에너지 데이터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들 빅데이터를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데 사업 역량을 집중해야 해요. 새로운 시장의 마중물 역할을 할 ‘인프라 창출 기업’으로의 전환도 필요하고요.”

▲법·제도적인 부분의 개선이나 국민들의 공감대·인식 확산 등 앞으로 넘어서야 할 과제도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에 대해 조언하신다면.

“블록체인 패러다임으로 옮겨가는 건 이제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를 해야할지 아닌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고요. 지금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시급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인데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사안의 시급함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것 같아요.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4차 산업혁명 전략에 ‘블록체인’은 단어만 들어있을 뿐 실질적인 방법은 빠져있는 상황이에요. 기반 기술을 키우고,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 없는데 어떻게 블록체인 패러다임을 준비할 수 있겠어요. 기존 산업 생태계와 주체들의 역할을 파괴적으로 개편하고,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밖에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에너지 분야를 넘어 블록체인이 바꿀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블록체인은 이미 늦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놓치기 전에 지금이라도 블록체인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합니다.

또한 블록체인을 단편적인 기술이나 개념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블록체인 패러다임은 곧 생태계에요. 정부와 산업계, 국민이 모두 상생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바로 블록체인의 본질이거든요.

우리나라는 과거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에 힘입어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를 갖춘 국가가 됐습니다. 그런데 산업은 어떤가요. 인프라는 강국인데 산업 부문에서는 그에 걸맞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 못하잖아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규제 혁신 등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탓이 크다고 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IT 인프라 강국을 일군 성공 사례와 IT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실패의 경험을 모두 갖고 있는 국가에요. 이를 타산지석 삼아 블록체인 경제에서는 인프라와 산업 모두에서 강국이 될 수 있도록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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