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회의원들의 제2의 월급으로 불립니다.

사실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경비’ 명목으로 쓰여야 하지만 그냥 국회의원들에게 퍼주다시피 지급됐습니다.

나는 사실 국가정보원에서 요긴하게 쓰여왔습니다. 청와대에도 상납돼 통치자금(?)으로도 쓰인 몸입니다. 국정원뿐만 아니라 검찰, 경찰, 국방부 등도 나를 애용했습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성완종 리스트 수사과정에서 “나를 받아 생활비로 썼다”고 폭로하면서 국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내가 높으신, 은밀한 분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사용내역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수증 첨부 등 증빙과정이 필요 없다는 게 그분들이 나를 사랑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최근 나의 사용내역이 법원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개됐습니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대법원까지 가는 법적 투쟁 끝에 나의 내역을 강제로 제출받은 것입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3년간의 내역인데, 그 규모는 240억원 정도입니다.

나는 국정수행 활동경비 명목으로 국회에 갔는데, 국회의원들은 나를 월급 내지 쌈짓돈처럼 썼습니다.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과 상임위원회 활동, 국회의장의 행사비용, 심지어 사무처 직원들의 통상적인 활동에까지 쓰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집 생활비로 쓰거나 자녀 유학비용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회의장, 국회의원 해외방문 때에도 제가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른바 ‘특수활동’이라고 부를 만한 활동에는 거의 쓰이질 못했습니다.

이런 내역이 공개되자 참여연대는 나를 국회에서 아예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2018년도 국회 특수활동비 지급을 당장 중단하고, 2014년 이후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을 지체 없이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론의 흐름이 좋지 않게 되자 정치권에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정의당에 이어 바른미래당도 나의 폐지를 당론으로 의결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정당까지 이런 결정이 파급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나는 음지에서 일합니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이런 점을 악용해 나를 무분별하게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세상도, 시대도, 관행도 달라졌습니다.

나도 떳떳해지고 싶습니다.

나도 국가를 위한 일에 제대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최근 ‘나를 폐지하는 것보다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쪽이 우세한 일반국민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내 존재 이유를 증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나는 국민들이 모아준 세금입니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이름은 특수활동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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