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경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성한경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6.13 지방선거의 승리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게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향후 정부 정책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이 본격적인 심판을 감당해야 할 책임감을 남겨주었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논란이 거듭되는 소득주도성장보다는 혁신성장을 통해 경제성장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야 하고, 그 혁신성장의 단초로서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관행처럼 준비되어온 규제혁신점검검회의를 불과 3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취소했다. 그 배경으로 준비된 규제개혁안들이 대통령, 여당, 그리고 규제철폐를 원하는 재계 입장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정부와 국내이해당사자들이 주도하는 그리고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사실 규제개혁은 지난 정권에서도 주장해 왔던 해묵은 주제이다. 이명박 정부는 친기업정부를 표방하면서, 집권초기에 적극적 규제철폐를 천명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손톱밑 가시, 규제단두대라는 표현들을 써가면서 규제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규제개혁의 성과에 대해 별로 들어본 바가 없다. 그 이유는 과거 정권이 규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 규제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규제개혁을 임의적으로 활용하여 이익을 취하려 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모든 규제들은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혹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한 규제는 새로운 이익집단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고 그들이 규제의 수호천사로 자리 잡는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좋은 규제들에 대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거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정부의 규제개혁 대상리스트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려 한다. 결국, 규제의 모든 당사자들은 규제개혁을 각자의 입맛과 이익에 맞춰서 재단하려고 모든 노력을 다한다. 특히, 규제개혁에 따른 이익의 크기가 크다면, 그만큼 커다란 저항이나 로비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규제개혁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거듭되면서 시간이 흘러가면, 규제개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5년 단임 대통령제하에서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부는 효과적이면서 빠른 규제개혁 방안을 찾고자 한다. 오히려 섣부른 규제개혁의 효과는 장기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비정규직의 대량 실직을 막기 위해 도입했던 2006년 비정규직법은 일시적으로 비정규직들을 구제했지만 장기적으로 수많은 비정규직들을 양산했고, 비정규직과 정규직간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다는 주장들을 많이 들어왔다.

결국 규제개혁이 진정한 효과를 얻는 길은 단기적인 정부주도의 개혁이 아니라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적극적 대외개방을 통한 것이다. 대외개방은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적인 규제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첫째, 대외개방은 국내 규제의 수준을 합리성과 효율성을 인정받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준하도록 만든다. 둘째, 대외개방을 통한 규제개혁은 국내 이해당사자들이 임의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가장 빼어난 혁신의 시작은 2009년 11월 애플 아이폰의 국내출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위피(WIFI)라는 폐쇄적인 국내 규제가 사라짐으로써 가능해졌다. 국내모바일폰 산업은 위피(WIFI)를 통해 블랙베리나 아이폰과 같은 외국 스마트폰의 국내진입을 효과적으로 막아 왔다. 그러나 그러한 국내규제가 사라지지고, 국내 모바일폰 산업은 애플의 아이폰에 국내시장을 급속도록 잠식했고, 모양만 그럴 듯한 휴대폰으로 아이폰과 맞서려던 애처로운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은 그 실패를 곱씹으며 애플의 아이폰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스마트폰을 만들어 내었다. 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의 본격인 도입은 국내 소비자들의 모바일 인터넷 환경 접근성을 높여 모바일 기술을 활용한 혁신의 아이콘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즉, 국내의 폐쇄적 기술규제를 철폐하여 외국의 스마트폰에게 국내시장을 개방한 것은 국내 스마트폰과 모바일 환경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과정에서 개방을 주저하던 규제 당사자들의 부정적 영향력은 글로벌 시장의 흐름하에서 자연스럽게 최소화되었다. 모쪼록 대외개방을 통한 장기적 혁신성장의 역사가 다시 씌여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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