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우위보단 시장 선택에 맡겨야”
에너지 밀도 적고 폭발 등 안전성에 강점 있지만 가격 측면에선 경쟁력 갖춰야

중소 ESS 업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는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앞으로 국내 중소형 ESS 시장에서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국내에선 리튬이온배터리를 공급받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 중소 업체들의 리튬인산철배터리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과연 이 제품을 현장에서 사용하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ESS 가격 결정하는 리튬이온배터리, 국내 중소업체에는 안 준다?

설치 용도와 환경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ESS는 전기적 특성을 변환하는 PCS와 배터리 충전 상태를 관리하는 BMS, ESS 전반을 컨트롤하는 EMS,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ESS의 가격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배터리’다. ESS 전체 가격에서 배터리는 70% 안팎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SS 가격의 변동 추이를 배터리 가격 동향을 중심으로 예측하는 건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ESS 시장의 주도권은 EMS 기술 등 제품의 두뇌역할을 하는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닌 배터리 생산 기업에 쏠려 있다. 일부 발주처에선 ESS 가격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EMS의 값을 깎아 달라고 요구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인 배터리 제조사들의 횡포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소 ESS 업체 대표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안전성 이슈를 이유로 중소기업에 리튬이온배터리 공급을 중단한 이후 제품을 공급받고자 하는 일부 업체에 기업의 영업정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배터리를 받으려고 기업의 경영정보와 기술을 보여주는 게 과연 타당하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국내에서 배터리를 구할 수 없었던 중소 ESS 업체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고, 중국의 비야디, CATL 등의 전지업체들이 생산해 온 리튬인산철배터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중 FTA로 배터리를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게 돼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도 중소 업체들이 리튬인산철배터리를 선택하게 한 원인이 됐다.

중소 ESS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대표는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 적지만 폭발 등 안전에선 ‘강점’

그렇다면 LG화학이나 삼성SDI 등 국내 대기업이 주도해 온 리튬이온배터리를 중국에서 생산한 리튬인산철배터리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결론은 ‘Yes’다.

전문가들은 리튬이온배터리와 리튬인산철배터리는 ‘기술적인 우위’라기보다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특성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리튬인산철배터리를 사용하는 데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설명이다.

김동균 화학연구원 박사는 “리튬이온배터리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리튬전지들은 전극의 소재를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국내에서도 다른 소재를 전극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배터리의 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상민 전기연구원 전지연구센터장도 리튬이온배터리라는 큰 범주 안에 리튬인산철배터리가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양극과 음극을 어떤 재료로 하느냐에 따라 붙인 이름이라는 것이다. 리튬이온배터리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에너지 밀도 측면에서도 격차가 많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센터장은 “리튬인산철배터리는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20~30%가량 적다. 이는 충방전 시간이 다소 짧다는 것인데 사실 큰 차이가 난다고 보기엔 어렵다”면서 “오히려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열화로 인한 폭발 등 안전성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제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시장의 우려를 불식할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샘플과 실제 설치 제품 사이의 격차 등 ESS 시스템의 신뢰성을 저해할 여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품의 개런티(보증)와 유지관리, 설치 과정에서 보호회로 누락 등의 안전성 이슈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시장에서 선택받으려면 가격 등 경쟁력 갖춰야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국내 ESS 업계의 시각도 바꾸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리튬이온배터리의 경우 대기업이 개발·생산에 주력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만들어졌고, 다른 배터리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보다 고밀도의 에너지저장이 가능한 리튬이온배터리에 투자가 집중됐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생산 능력과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리튬이온의 가장 큰 단점인 비싼 가격도 리튬인산철배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 국내 업체들의 선택에서 멀어지게 됐다. 이 기간에 중국은 리튬인산철배터리 연구에 박차를 가했고, 기술 수준과 생산 능력을 높여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도 리튬이온배터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모습이다.

중국에서 수입한 리튬인산철배터리 셀을 한국에서 조립, 판매하고 있다는 A 업체는 “리튬이온배터리와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사용 용도에 따라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차이가 있어 단정적으로 좋고 나쁨을 말하기가 어렵다”면서 “기술적으로는 폭발 등의 위험이 있는 리튬이온배터리가 리튬인산철배터리보다 한 단계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내 ESS 시장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는 B 업체 관계자는 “다양한 선택지가 제시되고, 구매자들이 자신의 요구에 맞게 이를 골라서 쓰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중국에서 들여오는 리튬인산철배터리의 경우 리센, 비야디 등 상위에 랭크된 기업의 제품 품질은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시장에서 선택받은 제품만 살아남을 것이다. 플루 배터리 등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영역들의 상용화도 하루속히 이뤄져야 한다. 결국 시장에서는 가장 많이 고려할 부분이 ‘경제성’인데 최근 관련 업체들에서 견적을 받아보니 리튬인산철배터리가 오히려 약간 비쌌다. (리튬인산철배터리도) 가격적인 측면에서 좀 더 경쟁력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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