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얻는 것은 졸업장 하나일 뿐이라는 ‘대학 무용론’이 배회하지만, 실은 대학 교육 과정을 거치면 ‘안경’을 하나씩 받게 된다. 4년간 배운 학문이 사고체계를 지배해, 전공에 따라 사물,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확연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사프로그램에서 맹활약 중인 유시민 작가가 그의 저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에서 소개한 대학시절 일화를 보면, 유 작가는 점심을 함께 먹던 친구가 음식을 남기자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해야 한다”며 훈계했다. 이에 그 친구는 “쌀값이 오르려면 수요가 증가해야하고, 수요가 증가하려면 소비가 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처럼 밥을 남기는 것이 농민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여세를 몰아 “밥의 한계효용이 제로(0)가 됐다. 여기서 더 먹는 밥은 한계효용이 마이너스(-)가 되므로 그만 먹는 게 나로서는 합리적인 행동”이라며 논쟁을 종결시켰다. 유 작가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인간성이 나빠진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경제학을 전공한 기자도 경제용어인 ‘매몰비용’(sunk cost)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됐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비용으로, 경제적 의사결정을 할 때 금액에 관계없이 고려되지 않는다. 매몰비용에 대한 개념을 배운 후 비용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어느 해 겨울 저렴한 가격의 헬스장 1년 회원권을 끊고,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며 열심히 운동할 것을 다짐했다. 특별 이벤트 상품이므로 환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헬스장 회원권 구매비용은 매몰비용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돈이 아까워서라도 헬스장에 가야겠다’는 마음은 ‘헬스장비는 매몰비용이기 때문에, 깨끗이 잊고 쉬는 게 더 낫다’는 핑계를 이기지 못했다.

지난 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 원전 4기 백지화를 의결했다. 월성 1호기의 설계 수명 연장을 위해 투입된 매몰비용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라왔다. 경제학 관점에서는 향후 가동 시 경제성을 따질 문제이지, 매몰비용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한다.

영화관에서 심사숙고해서 고른 영화가 재미없다면 영화비가 아깝더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매몰비용만 놓고 보면 경제학적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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