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전 단가입찰 앞두고 분위기 '뒤숭숭'

중소 변압기 제조업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관수, 민수 할 것 없이 꽁꽁 얼어붙은 수요에다 만성적인 자금난·인력난이 겹치며 벼랑에 몰리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수도권에 위치한 A변압기 업체. 평소엔 주차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입구부터 변압기가 빼곡하게 쌓여있던 모습은 이제 온데 간 데 없다. 줄지어 출고를 대기하며 정렬해 있던 변압기 야적 자리는 10여대 차량이 대신했다. 힘차게 돌아가던 공장 기계음도 예전 같지 않다.

“공장가동률이 겨우 50% 정도밖에 안돼요. 그만큼 일감이 없는 거죠. 다른 회사보다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게 이 정돕니다.” 이 회사 임원의 하소연이다.

이튿날 찾은 수도권 B업체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다.

공장 한 켠에는 코어 등 원자재와 변압기 부품들이 기약 없이 제 차례를 기다리며 쌓여있을 뿐, 도무지 제조업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고 스산하다.

이 회사 직원은 “요즘 같으면 월급받기도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일감이 없어 이렇게 설비들이 놀고 있는데도 뾰족한 대책은 없고 정말이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C업체의 사정은 더 나빴다. 이 회사 사장은 “7월부터 직원들 여름휴가를 보내야 하는데 그 전에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예년의 3분 1수준에 불과한 일거리로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주문량과 납품처를 적는 화이트보드엔 별다른 메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과거 호황기에 조금 벌어놨던 자금으로 근근이 버틴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변압기 업계는 전반적으로 일감 부족에 따른 수주 절벽에 직면한 모습이다. 여기에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한전 배전용 변압기 연간 단가 입찰은 기업들에게 또 다른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물량 가뭄 속 다가오는 최대 이벤트

배전용 변압기를 생산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최대 수요처는 한국전력이다.

이 중 업체들의 1년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한전 연간 단가입찰이다.

이 때문에 매년 입찰 때마다 변압기 제조업계는 입찰 구도를 놓고 다양한 설과 가정법이 난무하곤 했다. 입찰 결과가 몰고 올 파장은 업계 전체의 지형을 바꿀 만큼 대형급이다.

단체수의계약이 폐지된 이후 과거 11차례의 변압기 입찰에서 조합 컨소시엄 체제가 붕괴된 것은 총 세 차례. 2008년과 2009년, 그리고 2015년이다.

나머지는 모두 전기조합과 변압기사업조합 등 컨소시엄을 구성한 사업자 단체가 물량의 대부분을 수주했다.

지난해 역시 전기조합과 변압기조합이 사이좋게 물량을 수주하고 단가도 비교적 업체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을 형성했다.

지난해 8월에 진행된 고효율 주상변압기 입찰결과, 전기조합은 30kVA(광유), 50kVA(광유), 75kVA(광유), 100kVA(광유), 50kVA(난연유), 75kVA(난연유) 등 총 4만 1094대, 553억 5983만 8400원(부가세 별도)어치를 수주했다.

변압기조합(이사장 최성규)은 30kVA(광유), 50kVA(광유), 75kVA(광유), 30kV(난연유), 100kVA(난연유) 등 총 1만7124대, 224억 2832만 3900원(부가세 별도) 어치를 낙찰받았다.

평균 낙찰률도 한전 예정가격 대비 90%를 모두 상회하며 대체로 업체들은 만족스런 가격대를 형성했다.

‘이변’이 없었던 이 같은 낙찰 결과는 입찰 전부터 어느 정도 점쳐지던 모양새다.

단가 입찰 신청이 마감된 결과, 입찰 유자격을 획득한 총 50개 기업(관변단체 등 8곳 포함) 모두 전기조합 또는 변압기사업조합 컨소시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관변단체 2곳을 포함해 총 50개 기업 중 에너지밸리 5개 업체와 개발선정품 우선구매 대상업체를 42개 업체 중 31곳은 전기조합 컨소시엄에, 11개 기업은 변압기사업조합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입찰 직전까지만 해도 개발선정품 우선구매, 에너지밸리 제한경쟁 등 소수 기업에 배정된 물량이 대폭 늘어나 조합 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결과적으로 유자격 업체들이 예외 없이 조합 컨소시엄 체제를 선택한 배경에는 저가 출혈경쟁으로 치닫는 최악의 구도는 피하자는 현실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또 전기조합과 변압기조합이 입찰준비 과정에서 업체 이탈을 막기 위해 기업들을 단속한 것도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이후 진행된 아몰퍼스 주상·내염형 주상변압기를 비롯해 연말 콤팩트 지상변압기 입찰에서도 조합 컨소시엄 체제는 별다른 균열을 보이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됐다.

◆올해도 이변은 없을까

그렇다면 과연 올해도 예년처럼 무난하게 조합 컨소시엄 체제가 유지될 것인가. 어디까지나 예측이지만 현재로선 매우 불투명한 상황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지난해와 비슷하게 단가 물량이 나올 경우, 약 42개 업체가 컨소시엄으로 800억원 가량을 수주한다 해도, N분의 1로 나눌 경우 약 19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단독으로 응찰해 낙찰을 받는다면 이론적으로 최대 50억원까지 수주가 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더구나 올해는 작년보다 입찰 참가 자격을 획득한 기업이 10개 내외로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렇게 되면 입찰 물량이 동일하다는 가정 하에 N분의 1로 배정받는 물량은 3~4억원 정도 감소하게 된다.

특히 올 들어 일감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기업들의 딜레마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선택지는 두 가지다. 조합 울타리에서 괜찮은 가격대로 적은 물량을 수주하느냐, 개별 입찰에 나서 물량 확대에 치중하느냐다. 후자의 경우 일정한 가격 하락을 불가피하다.

가격과 물량, 양쪽 모두를 손에 쥐는게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에 가깝다.

업계 한 관계자는 “컨소시엄을 유지해도 업체당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이 10억원대에 불과하면, 가격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개별 입찰로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기업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특히 다른 아이템 없이 오직 한전 시장에만 올인하고 있는 전문 기업들의 고민이 상대적으로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컨소시엄 체제가 깨지기 쉽다고 본다. 유자격 업체는 45곳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합 컨소시엄이 유지될 것으로 보는 기업도 많다.

한 업체 관계자는 “지난 2015년 주상변압기, 2016년 패드변압기 입찰이 자율경쟁 구도로 가면서 서로 싸워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걸 기업들이 체득했다”면서 “학습효과가 충분하다. 올해도 조합 공동수주가 최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대표는 “우리는 무조건 공동수주로 간다. 개별 응찰로 물량을 따봐야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다른 업체들로 인해 경쟁 체제로 간다면 불가피하게 단독 수주 전략으로 선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밸리 입주 기업들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지난해엔 추정가격 205억여원(부가세 별도) 어치를 5개 기업이 제한경쟁을 통해 낙찰 받았지만, 올해는 최대 10여곳으로 참여자가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 입주 기업 관계자는 “입찰 물량이 지난해보다 동일하다면, 업체당 낙찰 물량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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