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덕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
박상덕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수석연구위원

1년 전 고리1호기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원년을 선포했기에 ‘탈핵 1년, 탈법과 왜곡의 시간’이라는 글을 쓰려고 했었다. 고리1호기 연설문, 신고리5, 6호기 건설 중지 및 공론화 과정, 신규원전 취소, 월성1호기 계속운전 취소 요구, UAE 바라카원전 1호기 완공식,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철학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보여줬고 탈원전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니 탈법과 왜곡의 1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체로 집권 초기에는 상황 파악이 어려워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공약을 무리하게 집행하지만 1년쯤 되면 실제 데이터를 접한 결과가 반영되어 기조를 바꾸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에 정한 내용을 지금의 내용, ‘원자력과 신재생의 상생’으로 바꿨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성 있게 에너지 문제를 다루어주기를 바라면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는 서로 상보적이다. 하기사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유지한다면 모든 에너지는 상보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독일에서는 이미 원자력이 상보적인 길로 가고 있고 원자력 비중이 높은 프랑스는 재생에너지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 왔다.

우리 원자력정책센터에서도 재생에너지가 증가할 경우를 대비해 세 가지 방안을 준비해 왔다. 원자력발전소 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안, 마이크로그리드 내에서 상호 협력하는 방안과 지금과 같이 송전그리드에서 서로 도와주는 방안이 있다.

먼저 원전 내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안은 원전의 가장 중요한 전원인 비상디젤발전기를 연료전지로 교체하고 연료전지에 필요한 수소는 태양광을 이용, 물 분해를 통해 얻는 방법이 있다. 고리지역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비상디젤발전기가 공급해야하는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으며 이 방법은 배터리로 대체하는 방법보다 더 경제성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수소가 부족할 경우 외부에서 수송해 보충할 수 있기에 배터리보다 더 안정적으로 장기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소형원전을 이용해 마이크로그리드 내에서 재생에너지와 협력하는 경우다. 소형원전은 피동안전성의 완벽한 구현으로 도시용 마이크로 전원으로 적합, 냉각수 문제의 완화로 내륙 깊숙한 곳에도 설치 가능, 그리드 용량에 맞추어 쉽게 증설 등의 장점과 대형 원전이 갖고 있는 규모의 경제성(Economy of Scale)과 맞추기 위해 모듈의 경제성(Economy of Module)까지 구현하고 있어 미국에서 개발하고 있는 NuScale 같은 경우 태양광과 같은 수준의 LCOE를 갖는 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더구나 소형원전은 부하추종 운전이 3세대 원전 보다 더 자유로워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즉각적으로 보상해 줄 수 있다.

세 번째는 송전그리드에서 원전을 유연하게 운전(Flexible Operation)하는 것이다. 사실 원전과 같이 경제성이 뛰어난 발전원인 경우에는 유연운전을 하지 않고 기저부하로 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의 비율이 높아지고 재생에너지를 무조건 구입해야하는 경우에는 기존 발전원들의 출력을 조정할 수밖에 없고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이미 유연운전을 통해 재생에너지와 협력하고 있다. 유연운전 방법에는 일일부하추종과 1차, 2차 주파수 조정 운전이 있다. 이를 위해 핵연료의 성능을 높이고 제어봉과 같이 자주 움직이는 장치는 중간에 교체를 고려한다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정부가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줄이고 그 공백을 재생에너지와 가스발전으로 대체하겠다고 한다. 전문가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지 않고 결정한 것이기에 언젠가는 정책을 변경해야만 하는 때가 오겠지만 그 이전에도 원자력발전소는 재생에너지와 상생하는데 기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다만 에너지 정책이 기술성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성, 환경성, 안보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다차원 방정식임을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 2년차에는 보다 사려 깊은 에너지 정책이 만들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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