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촌광장)시계 & 시간
작성 : 2018년 06월 11일(월) 08:20
게시 : 2018년 06월 12일(화)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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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수 GE 그리드솔루션 부사장

오늘날 우리는 과학문명의 홍수 속에 살아 가고 있다.
내가 살았던 전주에서는 정오에 부는 사이렌 소리(오포)에 낮 12시임을 알고 2부제 등교 하는 날은 오포소리에 맞춰 등교 준비를 하곤 했다. 물론 2부제 등교는 교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학년이었던 1, 2학년까지 만이었다. 하긴 한반에 80명 정도였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말이 안되는거다.

주 52시간 근무 라는 새로운 법규가 조만간 시행되는데 언제부터 시간이라는 개념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을까.

조선시대 아이들은 ‘ 동서남북’을 구분하는게 가장 먼저였지만 요즘은 시간을 알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오포소리 기준으로 대충 살던 삶은 어느사이부터 정확한 시간을 요구하며 사람의 일상적 행위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 됐다.
옛 선현들은 ‘동창이 밝아 오거나’, ‘노고지리가 우지질 때’ 일어나면 됐는데 지금은 시계의 알람에 맞춰 일어나야 한다.
고대 국가에서 천문학과 함께 신격화한 초월적 권력 출현은 하늘과 자신사이의 혈연적 관계를 입증하고자 했으며, 천체의 운행에 관한 비밀열쇠를 손에 넣은 권력은 하늘의 아들임을 인정 받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간은 하늘 그자체였고 주기적 흐름은 하늘의 뜻이었다.
숱한 기술자들의 창의적인 지혜와 땀의 소산인 천문관측기구들은 권력이 요구하는 달력과 시계를 만들기 위한 중간재에 지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달력과 시계는 각 문명권에서 하나의 독립된 세계 또는 천하를 구획하는 기준이었고 그 독립된 천하의 주인은 이기계를 통해 신을 대신해 시간을 지배하는 권리를 선포했다.
13세기말 유럽에서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후 시계는 점차 그 정확도를 높여갔고 그에 따라 일상에 대한 지배력도 키워갔다. 유럽도시에서는 산업혁명에 앞서 시간혁명이 일어났는데 시계에 맞춰 시간을 지키는 우편마차는 증긱 기관차 보다 먼저 등장했다.
기계식 시계에 의해 시간은 균등한 부분으로 분할할 수 있고, 계산할 수 있으며 절약하거나 낭비할 수 있는 사물이 됐다.
시간이 사물로 변함으로써 신과 시간 사이 관계도 소원해졌다. 시간이 물화한 만큼 시계도 평범한 물건이 된 셈인데 현대가 과잉소비의 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시계는 유난히 과소비되는 물건이다.
지금 나는 손목과 책상 위, 주머니, 거실 벽에도 시계를 차고 놓고 걸고 있다. 시간을 알지 못하면 당황하게 돼버린 탓인데 막연한 불안 상태는 현대 도시인 대다수가 공유하는 것이다.
귀하다는 것은 드물다는 것인데 흔해지면 천해지기 마련이다. 시계가 대중화 되면서 거기에 달라붙어 있던 신의 자취도 희미해져갔다.
18세기에 바다를 항해하던 사람들처럼 GPS는 3개의 인공위성이 알려주는 시계를 비교함으로써 현재의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 시간을 측정하는 기술의 발전이 선박에서 철도로 다시 항공교통과 GPS까지 공간의 정복에 관련된 기술의 발전이 가능하게 해줬다.
시간을 보려고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때마다 이에 연결된 기술을 굳이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인류의 발전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에 관련된 지식의 저장고는 커질수록 뒤로 감춰진다.
스마트폰에 집약된 과학적 지식이 우리를 소리없이 지원하지만 그 지식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갈릴레오가 보았던 제단등의 진자운동부터 최초 인공위성이 발사될 때까지 500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째깍거리는 시계의 지배를 받아 우리는 과거에 비해 훨씬 짧아진 시간 단위로 살아간다.
따라서 관심을 지속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포기하고 시계의 시간이란 추상적인 기준에 맞춰 살아간다.
시계의 알람소리는 여전히 내 삶에 관한 전권을 쥔 신의 목소리이다. 알람 시각을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매일 알람음을 거역하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야 한다. 단지 알람음을 중단시킬 권리가 있는 것으로 만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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