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규제 빗장 풀고 합리적 환경성 평가로 풍력 돌릴 동력 찾아야

안산시 누에섬 풍력발전단지(사진 유니슨 제공)
안산시 누에섬 풍력발전단지(사진 유니슨 제공)

2030년까지 16.5GW. 정부가 지난해 말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명시한 신규풍력 설비 목표 규모다. 최소한 일 년에 1GW씩은 꾸준히 설치해야 하지만 올해 1분기 풍력신규설비는 60MW를 기록했다. 남은 3분기동안 총력을 다해도 1GW는 꿈의 숫자라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풍력발전의 나아갈 길과 전망을 짚어봤다.

◆ 해상풍력 가중치 인상했는데 ... 풍력업계는 ‘덤덤’

지난 5월 18일 정부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개선 공청회에서 해상풍력의 가중치를 상향조정했다. 육상풍력은 기존과 같이 1.0으로 두고, 해상풍력은 구간별로 (2.0~3.5) 올린 것이다.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에 따라 풍력 발전 육성의지를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지만 업계에선 이를 두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는 반응이다. 개정될 가중치가 실제 사업에 적용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서다.

한 대기업 풍력발전개발사업자는 “해상풍력(사업)은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최소한 4년에서 5년이 걸리기 때문에 사업 준비를 다 마친 후에도 현 가중치가 유지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대부분의 풍력사업자들은 이번 가중치 변경이 사실상 자신에게 해당하는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풍력발전사업을 위해서는 풍황조사에만 1여년, 환경영향평가에 2여년, 지자체 접수와 심사, 부지매입 등에 1~2여년이 걸린다. 이 밖에도 주민민원과 계통문제를 고려하면 최소한 2023~2025년 사이에야 착공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게다가 해상풍력은 육상풍력보다 시간과 비용이 배로 더 드는 만큼 사업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기업들은 사업을 함부로 진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사실상 이번 해상풍력 가중치의 수혜자는 사업이 진행 중인 서남해 해상풍력이 유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풍력개발업자 역시 “1MW당 거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사업에 제도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다는 건 고민스러운 일”이라며 “이번에 개정되는 가중치는 2025년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는 “풍력발전사업의 가중치 변동성에 따른 사업자들의 애로를 알고 있다”며 “이번 가중치 개정에서 임야 태양광 가중치의 유예기간 기준을 개발행위허가 기간으로 잡아놓은 것처럼 (해상)풍력사업에서도 유예기간을 조정하는 식의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환경영향평가의 높은 벽 ... 입지 규제에 ‘불허’

풍력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입지 선정과 주민 갈등으로 꼽힌다. 특히 입지선정에 있어서 풍력업계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 공공연하게 풍력발전사업 개발이 더 어려워졌다고 입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모 발전사업자는 “환경부에서 풍력이 좋은 입지는 대부분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며 “개발행위허가나 도시계획시설결정을 받아야할 때 걸리는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와 생태자연1등급 사안”이라고 말했다.

국내 풍황 우수지역 상당 부분이 환경부 생태 1등급지와 겹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지난 2014년 10월 환경부는 ‘육상풍력 개발사업 환경성평가 지침’을 내놓으며 풍력사업에 대한 합리적인 환경성 평가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생태자연도1등급 지역의 경우 1등급 지정 기준과 현저한 차이가 있거나, 사업 추진을 위해 포함이 불가피한 경우 충분한 환경보호대책 강구를 전제로 입지가능여부를 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실상 이 지침은 업계에선 ‘사문화’된 것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모 사업부지의 풍력발전사업의 인허가 진행 중 부지의 생태 등급이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갑자기 바뀌어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는 등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불허’를 받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개발 입지의 일부분이 생태자연도 1등급지를 포함할 시에는 풍력설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부발전 관계자는 “풍력사업의 환경적 순기능을 고려해 생태자연도 1등급지 일부를 포함하더라도 사업추진이 가능하도록 인허가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참여형 풍력사업을 추진할 경우 생태자연도 1등급지를 포함하게 하는 등 예외규정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풍력 사업자 역시 “1등급지를 대신해 대체 식생지를 만들거나 입지부지 면적의 2~5%는 (허가를 낼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자구방안을 마련해 사업이 가능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환경부가 발표한 육상풍력 지침에서 보듯 절대 불가가 아닌 협의 가능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풍력산업 생태계도 말라간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내놓은 것과 달리 풍력발전 시장은 꽁꽁 얼어있다. 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 풍력발전사업이 착공에 들어간 사례는 없다. 차동렬 풍력산업협회 실장은 “현재 협회가 파악하고 있는 공사 중인 풍력발전 단지는 울진 현종산(57.6MW), 정선 정암(29.9MW), 영광 풍력(79.6MW) 발전단지”라며 “이들 모두 전 정권에서 사업허가를 받고 착공에 들어간 곳으로, 이번 정부의 임기 시작 후 첫 삽을 뜬 예는 없다”고 말했다. 풍력사업이 개발단계를 거쳐 실제 착공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해도 입지 규제 · 6월 지방선거 등의 걸림돌이 만만찮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풍력발전사업이 인허가 과정에서 좌초되면서 풍력발전단지 확산뿐 아니라 관련 사업도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기자재 사업, 설비 운반·설치 분야 기업들이 일감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는 형편이다. 한 개발 사업가는 “최근 베스타스나 두산중공업, GE, 지멘스 등 풍력설비 기업의 영업부서 사원들이 (자리보전을) 두려워한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한국 내에선 수주할 일거리가 없어서 동남아 풍력 시장을 헤맨다는 풍문”이라고 전했다.

풍력산업과 연계된 사업들의 일감이 없어진 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성진기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해상풍력팀 팀장은 지난 4월 신재생에너지 춘계학술대회에서 한국의 풍력산업의 침체 원인을 낮은 수용성과 정책 실종으로 인한 ‘시장 축소’로 짚은 바 있다. 그는 “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서남해 사업이 지연됐다”며 “주요 기자재 업체가 사업에서 손을 뗀 것은 수용성과 인허가, 경제성에 대한 정책이 실종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화도 유니슨 부사장 역시 “정부가 풍력산업을 육성하고 싶다면 시장을 과감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장의 규모를 매년 1GW씩 크게 늘리는 등 지자체와 주민 민원을 해결하고 시장을 확대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며 “이것이 국내 기업들이 외국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풍력 발전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외국 기업의 유입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이 올 텐데, 현재처럼 조금씩 시장을 연다면 국내 기자재 관련 사업까지 모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시장의 규모를 조금씩 늘린다면 한국 풍력산업 내 관련 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발판삼아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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