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회사를 운영하는 A는 엔지니어링 공장을 설립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콘테이너 제조, 판매 등의 사업을 하는 B로부터 4억 5000만 원을 지급받았고, 이후 엔지니어링 회사를 설립한 후 스스로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위 돈으로 엔지니어링 공장을 완공했습니다.

B가 A에게 지급한 4억 5000만 원의 정산 혹은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B가 사망했고, A는 위 돈이 ‘투자금’임을 전제로 일정한 조건하에 B의 상속인들에게 4억 5000만 원을 반환해 주겠다는 확인서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A가 약속한 일정에 따라 돈을 반환하지 않자 B의 상속인들(원고)이 A(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원고들이 주장하는 투자금 반환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인 간의 법률행위에는 민법이 적용되고 일반 민사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10년인데(민법 제162조 제1항), 민법의 특별법인 상법은 상행위로 인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5년(상법 제64조)으로 단축하고 있어 피고가 원고 주장을 방어하고자 상법상의 상사시효를 주장한 것입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A와 B가 모두 상법상의 ‘상인’으로서 B가 A의 엔지니어링 공장설립을 위해 A에게 4억 5000만 원을 투자한 것은 A와 B의 영업을 위한 보조적 상행위에 해당한다는 논리로 위 투자금의 반환을 구하는 채권은 5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되는 상사채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2018. 4. 24. 선고 2017다205127 판결)은 원심 판결을 파기했습니다. A가 건설회사나 엔지니어링회사의 대표이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B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므로 위 투자금과 관련해서 A를 ‘상인’으로 볼 수 없고, B 역시 개인 자격에서 A에게 투자한 것이므로 B의 투자행위도 ‘보조적 상행위’가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대법원은 위와 같이 판단하면서 ① A와 B가 같은 고향 선ㆍ후배 관계로 친분이 두터웠다는 사실, ② A는 B로부터 받은 돈으로 엔지니어링 회사와 공장을 설립했는데, 위 회사는 ‘가연성 쓰레기를 이용한 고체연료를 만드는 기계생산 및 판매업’, ‘고체연료 및 조연제생산 및 판매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B의 콘테이너 제조ㆍ판매ㆍ대여업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 ③ B의 자금 지급과 관련하여 투자약정서가 작성되거나 자금 투자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의 배분, 투자금의 반환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한 구체적 약정이 없다는 사실을 논거로 제시했습니다.

상법이 상사시효를 규정한 취지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특성을 고려하여 상거래관계를 간이하고 신속하게 종결시키려는 것으로, 대법원은 B가 A에게 4억 5000만 원을 빌려준 경위를 감안하면 반드시 그에 관한 법률관계가 조기에 정리되어야 할 이유는 없고 B의 유족인 원고들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태형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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