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를 ‘신의성실의 원칙’ 혹은 ‘신의칙’이라고 합니다. ‘신의’, ‘성실’이 무엇인지 법규정만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는 사인간의 법률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기본 원칙을 규정한 것으로 때로는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로 억울한 사정에 놓인 당사자를 보호해 주기도 합니다.

상가건물을 신축한 A는 2층에 있는 일부 점포에 관하여 각각 구분건물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는데, 당시 위 점포들(31개) 사이에는 별다른 경계나 호수 표시가 없었고, 바닥 중 일부에 검은색 테이프로 구획선 표시가 되어 있거나 점포들 사이에 1.3~1.4m 높이로 바퀴가 달린 경량 파티션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이후 위 점포들에 설정된 근저당권에 관한 임의경매로 소유권이 이전되고 최종적으로 B가 위 점포들을 모두 매수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후 대형장난감매장을 운영했습니다. 그러자 A는 소유권보존등기 당시 위 점포들은 구분건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유권보존등기 이후의 등기는 모두 무효라며 B에게 등기를 말소하고 점포를 모두 인도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위와 같은 사태를 초래한 A가 B에게 다시 점포들에 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가능한지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기존 법리상으로는 가능한 주장입니다. 상가건물과 같은 1동의 건물 중 일부분(개개 점포)이 구분소유권의 객체가 될 수 있으려면 테이프나 파티션 정도로 나눈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다른 건물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조가 구분되어 있거나 독립적으로 이용되고 있어야 하는데, 대법원은 위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설령 건물 일부분이 건축물관리대장에 별개의 구분건물로 등재되고 등기부에도 구분소유권의 목적으로 등기되었다 하더라도 그 등기는 효력이 없고, 보존등기 이후 경매절차에 따라 매수대금을 납부한 자도 적법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10. 1. 14.자 2009마1449 결정 등).

항소심에서는 위와 같은 법리에 따라 A의 청구를 인용했는데, 대법원은 B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2018. 3. 27. 선고 2015다3471 판결). 소유권보존등기 당시 구분소유권의 객체로서 적합한 물리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그 구분건물에 관한 매매계약이나 근저당권설정계약이 무효라고 할 수는 없고, 구분건물의 요건을 갖추도록 할 의무를 부담하는 자가 거래 상대방이나 이후 점포를 취득한 자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쉽사리 용납되기 어려워”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구분건물의 등기에 관한 기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경매절차로 점포들이 매각된 것이고 B는 당시의 등기부를 믿고 점포들을 취득한 것이므로 B를 보호할 필요가 크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만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른 주장을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주는 것은 아니므로 법률행위를 할 때에는 보다 꼼꼼하고 신중하게 법률관계를 분석·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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