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은폐 형사처벌제 도입 기대감 높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 위해선 대안 모색해야

한국건설안전학회가 20일 종로 래미안갤러리에서 개최한 ‘제5회 건설안전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한국건설안전학회가 20일 종로 래미안갤러리에서 개최한 ‘제5회 건설안전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의 발제를 경청하고 있다.

매일 220명. 지난 2015년 산업재해보상보험 발표에 따른 일평균 재해자수다. 하지만 산재은폐, 미보고 등 숨은 통계를 포함한 실제 재해자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중론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대 5배까지도 재해자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한국건설안전학회가 20일 종로 래미안갤러리에서 개최한 ‘제5회 건설안전 세미나’는 이처럼 표면적인 통계의 이면에 자리한 국내 산재 정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산업재해은폐의 문제점과 대책방안’을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 산재 정책의 현황과 개선책 등이 두루 조망됐다.

세미나에 참석한 건설 분야 노동계·학계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산재은폐를 근절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산업계가 직면한 제1의 선결과제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주체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산재의 특성을 반영하듯, 문제의식과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해선 다소 입장 차가 드러났다.

◆노동계, “산재은폐 형사 처벌제 긍정적…제3기관이 신고토록 해야”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산재은폐를 근절하기 위해선 은폐자에 대한 처벌이 필수적”이라며 “지난해 말 도입된 산재은폐 형사처벌제도는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었던 기존 법의 한계점을 보완해 실질적인 근절효과를 낼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실장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보고 규정이 되레 산재은폐를 방조하는 결과를 내왔다고 지적했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에도 24시간 내에 보고의무만 이행하면 처벌이 불가능했고, 설령 법 위반을 하더라도 실제 처벌이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그쳐 강제성이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 말 산안법의 시행령·시행규칙이 개정됨에 따라 산재를 은폐한 사업주와 은폐 교사·공모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며, 또 산재 미보고·거짓보고자에게도 최대 1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히 최 실장은 이 제도가 형사처벌 대상을 ‘누구든지’로 확장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사업주를 포함해 노동자, 지정병원 등 누구나 산재은폐 과정에 개입 시 처벌받게 되는 게 핵심”이라며 “담합, 강요 등 관행처럼 굳어진 산재은폐를 근절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근본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병원 신고제’를 제시했다. 현장에서 산재 신고 여부가 논의되는 현실에선 노사 갈등으로 비화될 우려가 큰 만큼 제3의 기관인 병원에서 신고토록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최 실장은 “의사 신고제도는 독일과 미국 워싱턴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라며 “산재 신청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적절한 치료와 직장 복귀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 “산재를 산재로 신고해야…산재통계 정상화 시급”

이용수 명지대 교수는 산재은폐 형사처벌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재통계의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현행 건설업체 산재발생률은 환산재해율로 산정하고 있어 경미한 재해의 경우 산재은폐 유인이 많았다”며 “질병 사망자의 경우에도 실제 질병을 야기한 사업장과 이후 사업장 간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산재은폐가 불가능한 사고사망자를 기준으로 사망만인율을 산출해야만 사실에 기초한 정부정책을 수립·집행할 수 있다”며 “산재예방계획과 고용노동부 사업계획 등에서 재해율 목표 대신 산재통계정상화 목표를 설정하기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산재 통계 산출방식의 한계점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산재보험 가입사업장에서 요양 신청한 산재만 통계에 반영되고, 재해경중에 관련 없는 ‘건수’ 중심으로 수치가 산출되는 등 여러 난맥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 교수는 “제대로 된 통계로 산업안전보건정책을 수립해야만 ‘사후적 처벌’과 ‘예방적 접근’을 구분할 수 있다”며 “효과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서라도 산재 보고 제도 개선과 함께 통계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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