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잔의 BEAU-RIVAGE-PALACE 호텔 다이닝룸.
스위스 로잔의 BEAU-RIVAGE-PALACE 호텔 다이닝룸.

로잔의 호텔에서는 단 하룻밤만 묵기 때문에 오늘밤이 시작이자 마지막 밤이다. 로잔에서의 마지막 밤을 근사하게 지내기로 하고 호텔 옆 레스토랑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한국에선 비싸서 먹을 수 없는 식사를 주문했다. 푸아그라를 에피타이저로, 메인요리로는 양고기 스테이크다.

식사를 하던 중 한국인처럼 보이는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가 혼자 식당에 들어와 식사를 주문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의 ‘촉’으로는 분명 한국사람이다. 이런 곳에서 마주치다니 신기하다. 이곳에 거주하시는 분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다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물어보니 역시 내 촉대로다. 우리는 서로 신기한 인연을 기념하여 와인을 한잔 했다. 그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아동심리상담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가브리엘 샤넬의 묘를 보러 이곳에 왔고 샤넬에게 영향을 준 여러 곳의 장소를 여행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오랫동안 혼자서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다녔지만 한국 사람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무척 신기해했다. 직업이 교수여서 시간이 나는 방학 때 세계 어느 한 도시를 정해 한 달씩 묵는데 이번에는 이곳 스위스 로잔이라고 한다. 그녀는 나에게 가까운 곳에 ‘오드리 헵번’이 살던 데가 있다며 가보기를 추천했다. 그날 밤은 처음 만난 이와 온갖 수다를 풀어놓았다. 그리고, ‘언젠가’라는 말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호텔에 돌아와 룸에 있는 브로슈어를 보다가 의외의 정보를 발견했다. 가브리엘샤넬이 로잔에서 살았다는 호텔이 소개돼 있었다. 서울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정보였다. 내일 오후엔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몰랐던 것처럼 그냥 떠날 수도 없었다. 어쩌면 좋을까, 잠시 생각하다 일단 구글맵으로 위치를 검색해보니 내가 묵고 있는 ‘Chateau d’Ouchy’ 호텔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었다. 이건 또 다른 도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 겸 호텔로 향했다.

샤넬이 살았던 호텔은 규모가 상당히 큰 부지에 있어 걸어서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올림픽 뮤지엄 바로 옆에서 겨우겨우 찾은 출입구의 커다란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시 담장을 따라 걸어 겨우 주차장 입구를 발견했는데 비밀번호를 알아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유럽의 최고급 호텔은 대부분 예약되어 있지 않으면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무진장 철저하다. 한국인들에게 ‘팔레스’ 는 그냥 일반명사일 뿐이지만 유럽에서는 이름에 팔레스라는 단어가 붙은 호텔은 말 그대로 궁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평범한 한국여자의 머리로 이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BEAU-RIVAGE PALACE’ 호텔을 지키고 있는 도어맨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생각하려니 머리가 복잡했다.

내 상식으로 주출입구는 호수를 바라보는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있었고 그곳을 나처럼 걸어서 접근하는 투숙객은 없나보다. 호텔투숙객들이 해변으로 쉽게 나갈 수 있는 비상계단을 발견하고 결국 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수법으로 그곳에 들어갔다. 그렇게 어렵사리 안으로 들어갔으니 그냥 혼자서 어슬렁거릴 수는 없다. 일단 뭐라도 해야 했으므로 레스토랑에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물론 이런 호텔은 투숙객이 아니면 돈을 낸다고 해도 아침 식사 요청을 거절당한다. 그러나 어떻게 들어왔는데 안 된다고 그냥 포기를 할 수 있는가? 플로어 매니저에게 내가 호텔에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니 잠깐 망설이다 웃으면서 레스토랑으로 안내를 해준다.

이런 기분은 나만이 알고 있는 그런 맛이다. 이런 식으로 어렵사리 내가 가브리엘 샤넬의 장소를 여행하면서 얻은 성과는 그녀가 그 옛날, 비즈니스로 엄청난 성공을 했고 상류사회의 핵심으로 들어가서 생활했다는 것을 몸소 온몸으로 느꼈다는 것이다.

몇 년 전쯤 세계적인 패션그룹인 LVMH가 절세를 위해 본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려다 여론의 뭇매로 포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샤넬은 이미 수십 년 전 미국에서 들여오는 향수의 로열티를 스위스은행 계좌로 받아 절세한 비용으로 궁전 (BEAU-RIVAGE PALACE 호텔)에서 오랜 기간 살았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국제 존타클럽’은 전문직 여성들의 지위 향상과 봉사를 목적으로 설립된 오래된 국제봉사단체인데 이 단체에서는 본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고 타인을 고용해야 ‘잘난 여성’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가브리엘 샤넬은 유럽 역사에서 최초의 ‘진정한 잘난 여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녀가 패션 비즈니스로 고용한 직원이 4000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던 무렵, 프랑스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의 고용을 창출한 여성이 또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녀가 멋지고 그녀가 좋다.

스위스 로잔의 BEAU-RIVAGE-PALACE 호텔 전경.
스위스 로잔의 BEAU-RIVAGE-PALACE 호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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