贊 지역 토속기업 살리고 경제 활성화 ‘한 몫’
反 중기 성장 막고 경쟁력 약화시키는 ‘주범’

조명업계 내에서 지역제한 경쟁입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은 지역제한에 대해 불만을,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은 적극 지지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에 위치한 토속 기업을 살리고 경제 활성화에 방점을 찍은 지역제한 경쟁입찰이 오히려 국내 중소기업들의 성장을 막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으로 몰리며 비판을 받는 모양새다.

◆지역제한 경쟁입찰, 어떻게 흘러왔나

지역제한 경쟁입찰은 전두환 정부 시절 지방 중소기업의 보호 육성과 해당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 기술 개발에 대한 동기부여 등 다양한 부분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시작됐다.

당시 전두환 정부는 1억 원 이하의 지방공사를 해당 지역의 중소업자에게 입찰할 수 있도록 제한하면서, 입찰을 따낸 업체가 전문 기술로 사업비를 절감하면 50%에 해당하는 비용을 개발보상금으로 지원했다.

이후 약 40년 동안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이 생기면서 불합리한 이유로 인해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한받지 않도록 관련 규정이 추가됐을 뿐, 제도가 시작될 당시의 의도는 그대로 유지된 채 이어져 왔다.

하지만 조명 업계에서는 지역제한이 사업 수행을 위한 자격 중 기술, 실적, 규모 등 추가적인 제한이 붙으면서 ‘이중 규제’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명 업체의 약 80%가 밀집돼 있는 수도권 지역은 지역제한이 전무한 상태이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지역은 철저히 지역제한으로 타 지역 업체의 진입을 막고 있어 오히려 역차별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지역제한 얼마나 심한가

지역제한에 대한 민원이 다수 제기되는 지역은 크게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북도, 전라남북도가 꼽힌다. 특히 그중에서도 부산시는 지역제한 경쟁입찰이 대외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최근 부산교통공사는 올해 상반기 재정을 집행하면서 지역업체 수주를 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총 3235억 원 규모의 2018년 연간 발주계획 중 93%인 3020억 원을 오는 6월까지 발주해 지역 경기 회복세를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부산교통공사의 발표를 확인하기 위해 2016년과 2017년 나라장터를 통해 발주한 현황을 살펴본 결과 2016년 723개, 2017년 393개 업체의 제품을 구매했는데 모두 부산 지역 업체였다. 확인이 불가한 일부 업체를 제외하고 확인 가능한 업체 내 비율이 100%에 달하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은 부산교통공사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부경대학교와 부산항만공사, 부산시교육청, 부산도시공사 등 부산 지역 내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지역제한을 통해 발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2년에 걸쳐 부산 지역 내 사업에 참여한 업체는 총 5만7431곳에 달하지만 타 지역 업체는 1만6874곳으로 전체 23%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77%에 달하는 사업 비중이 모두 지역 업체에 쏠린 셈이다.

◆이중 제한이냐 지역 경제 살리기냐

수도권 업체들이 주장하는 ‘이중 제한’ 논란에 대해 정부는 지역 경제 살리기 차원이기보다 이를 넘는 ‘지역 차별’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지역 업체에 일감을 맡겨 경제를 살리는 활동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게 정부의 해석이다.

2016년 부산시 교육청의 LED조명 발주 방식을 두고 감사원은 비용이 과대 투입됐다는 점을 지적했고, 조달청은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지역제한 외에 또 다른 제한을 두게 되면 이중 규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교육청은 직접생산증명원을 보유한 업체라면 모두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준을 완화하면서 부산·경남 조명 업체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부에서 수도권 업체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지역 편중’이 너무 심각하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조명 업체의 80%가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의 경우 경기도와 서울시 등 규모가 큰 사업이 발주되더라도 지역제한으로 묶지 않는다.

하지만 각 지역에 위치한 조명 업체의 수와 비교해 볼 때 지역제한으로 모든 경쟁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계약법상 불법은 아니지만 시장의 상황과 발주 규모, 기술 수준 등 복합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모든 입찰을 지역 업체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지방계약법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모든 계약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지역제한을 시행 중인 지방자치단체는 오히려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경쟁력 있는 수도권 업체와 달리 지역에서조차 구매해주지 않으면, 지역 내 신생기업이 성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중소기업들도 경쟁력에서 밀려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제품 하자 또는 유지관리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지역 업체는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지역별로 조성된 산업단지에 LED조명 기업을 다수 유치한 경우, 회사가 도산하면 지역 사업에 대한 이미지 또한 함께 추락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업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게 공무원들의 주장이다.

지역의 한 구매 담당 공무원은 “조명은 다른 업종과 다르게 업체들이 수도권에 몰려 있어 불공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타 업종의 경우 지역 규모에 맞게 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어 지역제한 제도를 통해 해당 지역 내 중소기업들의 성장이 가능했다”며 “오히려 업체의 수가 적다면 지역제한을 강화해 신생 업체가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제한 막기는 ‘한계’

지역제한 경쟁입찰을 위해서는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을 모두 준수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제한을 두는 공무원들은 대부분 지방계약법상에 언급된 문구와 해당 지자체에서 제정한 예규를 근거로 발주 공고를 내고 있다.

국가계약법상에는 ▲특수한 기술이 필요한 경우 ▲계약이행의 부실화 방지를 위해 특별히 인정되는 경우 ▲특별지원지역에 입주하거나 농공단지에서 생산한 물품을 구매하는 경우 ▲추정가격이 기획부에서 정하는 금액보다 낮을 경우 등이면 등기상 본점 소재지가 발주하는 지역의 업체만 참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계약법 제9조에 따르면 계약을 체결할 시 일반입찰에 부쳐야 하지만 계약의 목적과 성질, 규모, 지역특수성 등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참가자를 지역 입찰로 제한하거나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국가계약법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방계약법을 근거로 지역제한 경쟁입찰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지역제한을 막기란 한계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해외 선진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정한 경쟁과 우수한 제품을 구매하기로 유명한 독일은 모든 입찰을 공개 입찰로 진행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조명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선 입찰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이때 해외는 물론 발주 지역 내 기업들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공개 입찰에 참여해야 한다. 독일은 안전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강력한 사후 책임 시스템, 품질 중심의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역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해외의 선진 입찰 사례를 살펴보면 저렴한 제품보다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중심으로 구매가 이뤄지고, 이익을 낸 업체는 다시 제품 개발에 나서는 등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 있다”며 “독일은 지역 업체가 일정한 수익을 내는 것보다 정부 차원의 중소기업 지원책을 받아 경쟁력을 갖추고, 이후 규모가 큰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 익숙하다. 이런 입찰 문화가 현재 독일의 강소기업(Hidden Champion)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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