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의 태백산맥 중 제일 큰 고개이자 영동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는 대관령이 있다. 강릉에서 서울로 가는 첫 번째 고갯길인 대관령은 험하기도 하지만 겨울엔 눈이 많이 쌓이고 바람까지 세서 우리나라 도로 중에 가장 취약한 곳이다. 중학교 지리시간에 동고서저, 높새바람, 푄현상을 이 곳을 예로 배운 기억이 난다. 대관령구간이 포함된 영동고속도로는 1975년 왕복 2차선으로 개통되었다. 99고개의 대관령을 넘으려면 자동차로 달려도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2001년에는 이 험한 대관령을 5차선으로 확장하고 고갯길을 많이 줄여 통과시간을 절반으로 단축시켰지만 아직도 눈이 많이 오면 막히는 구간이다.

나와 대관령과의 인연은 참 깊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울진에서 서울을 가려면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관령을 넘어야만 했다. 그 후 첫 직장인 철도청에 근무하게 되었고 첫 번째 발령을 받은 곳이 강릉 인근 동해였다. 다시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을 다녔는데 관동대학교를 택했다. 겨울엔 눈 덮인 캠퍼스가 아름다운 이 대학은 대관령 끝자락에 있으며 영동지역의 유일한 야간대학이었다. 강릉 주변 직장인이 주학생이었는데 대관령초등학교 교사도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꽤 친해 대관령초등학교에 놀러 가기도 했다. 가을철엔 오대산과 소금강 계곡에 단풍여행을 갔던 기억이 남아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정선군 남면의 증산역(현 민둥산역)에 전기시설물 유지보수 전기통신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땐 학교를 가기 위해 선평을 지나 정선으로 가는 고개인 쇄재를 넘었고, 정선에서 나전을 거쳐 숙암계곡을 지나 진부면소재지를 거쳤다. 다시 대관령을 넘어 강릉까지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2시간 반 거리를 2년 오가며 길거리에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그런 대관령과 강릉에 대한 옛 추억이 새록새록 한데 철도공사를 퇴직하고 지난 2월 초 첫 번째로 간 곳이 강릉이었다. 그 날 경포대에서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35년 지난 세월의 인연들이 아직까지 연결되고 있다.

지난 달 철도공사를 퇴직하고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회사는 새로 뚫린 경강선 대관령 터널의 방재설비를 담당하고 있어서 올림픽 전에 그 터널을 점검 차 방문하였다. 우리나라의 일반철도 터널 중에 제일 긴 (21.755㎞) 대관령터널은 평창올림픽을 위해 경강선과 함께 개통되었다. 터널 중간에 열차교행을 위한으로 대관령신호장이 있다. 이제 강릉역에서 KTX를 타면 올림픽 스타디움이 있는 진부역까지는 16분 걸리는 짧은 거리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35분 정도 걸리는 시간을 반으로 줄였다. 경강선 철도는 원주근처 만종역에서 중앙선과 연결되어 청량리역을 거쳐 서울역까지 1시간 반 만에 강릉과 수도권을 연결시켰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서울과 평창, 강릉을 철길로 새로 연결시켰다. 이전에 중앙선 제천이나 영주역을 거쳐 동해~강릉으로 5시간 이상 걸렸던 것이 강원도의 험한 산을 뚫어 1/3이하 시간으로 줄인 것이다. 한번 뚫린 철길은 100년 이상 간다. 철도는 거리와 시간을 단축시켜 사람과 물자가 쉽게 오갈 수 있도록 한다. 새로 철길이 나면 그 길로 더 많은 교류가 시작 된다. 이제는 강원도 오지란 말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철길이 새로 생길 때마다 이렇게 지역은 획기적으로 발전한다. 최근 개통된 철도가 대부분 그렇다. 수도권 고속철도, 동해선 부전~일광간 전철, 포항~영덕간 철도 모두 지역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한번 뚫린 길은 영원하다. 내 철도인생과 대관령 고갯길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이다. 철도공사를 퇴직하자마자 자회사인 코레일테크로 옮겼는가 하면 대관령 끝자락 강릉의 옛 야간대학 친구들도 이제껏 잊지 않고 인연으로 이어가고 있다. 세상살이 사람관계에서는 인연이 참 중요한 것 같다. 한번 맺은 인연 또한 쭉 뻗은 철길처럼 변함없이 유지 되어가는 것이 좋다. 만나고 헤어짐이 잦은 현대인들이지만 철길처럼 한번 깔리면 영원했으면 참 좋겠다. 내 주변엔 그런 인연 깊은 사람이 많아 나는 참 행복하다. 이번 새 직장에서도 그런 인연으로 맺어지길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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