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주금액 50% 이하로 하도급…시공·시설물 부실 불러와
“지나치게 완화된 소방관련 법령 火 키웠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이곳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기초적인 소방설비도 갖추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화재가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이곳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기초적인 소방설비도 갖추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2월 동탄 메타폴리스에서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화재현장에서는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 건물은 개장 이후부터 6년여간 소방시설이 꺼져 있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가중됐다.

#29명이 사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이 사고에서는 건물 옥내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한층 커졌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스프링클러와 화재경보기 등 소방설비들은 화재가 발생했을 때 초동대응을 통해 피해를 줄이는 중요한 설비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지은지 오래된 건물일수록 소방설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아예 시설을 꺼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문제가 된 동탄 메타폴리스나 제천 스포츠센터가 대표적인 사례다.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큰 규모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도 이 탓이다. 스프링클러 같은 초동대응에 나서야 할 설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화재에 속수무책이 된다. 밀양 화재 참사 때 소방차가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음에도 큰 피해가 발생한 이유다.

지나치게 완화된 소방관련 법령으로 인한 구멍이 화재를 키우고 있다는 업계의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행 소방법에는 소방설비의 기초적인 기능 상태를 점검하는 ‘작동기능점검’을 건물 관계자가 직접 실시하게 돼 있다. 이 경우 점검자가 거짓으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소방본부에서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렵다. 인력의 한계 탓에 일일이 찾아가서 보고서를 체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 담겨야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 역시 2015년까지 전 건물주의 아들이 직접 소방점검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 문제가 제기됐다. 현 건물주가 건물을 구입한뒤 시행한 점검에서 대부분의 설비가 불량이라는 결과도 받았다.

보고서를 위조하더라도 과태료 200만원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 지나친 규제완화가 화를 부른 셈이다.

최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에는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아 논란의 중심에 놓였다. 이는 사실상 불법은 아니었다. 세종병원의 연면적(1485㎡)과 층별 바닥면적(354㎡)이 현행 소방법령에서 규정하는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보다 적기 때문이다. 90여명이 입원해있었지만 법으로 정한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대상에서 벗어나 기초적인 화재설비도 구비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사실상 소방법에 사각지대가 발생, 안전관리의 구멍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낮은 품질의 소방설비가 보급되는 점도 문제다.

소방업계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건물에서는 품질이 좋지 않은 소방제품을 설치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다보니 화재감지기가 오작동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아예 시설물을 꺼놓는 일이 많다.

이처럼 저품질의 소방설비가 보급된 원인으로는 소방시설공사의 통합발주로 인한 저가수주가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전기‧정보통신공사와 달리 소방시설공사는 아직까지 분리발주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업계는 지난 2002년부터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입법화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건설 산업계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해야 했다.

이는 소방시설공사업계가 제대로된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주 요인이다. 소방시설협회에 따르면 소방시설공사업계가 종합건설사로부터 하청을 받는 금액은 총 사업비의 53~7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종합건설사가 당초 발주금액의 87%에 도급받는 걸 감안하면 50% 이하까지 떨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저가하도급은 부실공사와 저급자재 사용 등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안전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면서도 정작 소방시설물을 설치하는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대형 화재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안전 강화’라는 허울 좋은 구호만 외칠 것이 아니라 제도적인 허점을 막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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